벽에 줄지어 꽂아 둔 종이 카드와 사진들

드릴을 팔려면 구멍을 팔아야 합니다

사례 18 : 상세페이지 카피와 핵트롤

2026.07.21.조회 8

상세페이지를 만들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업계 종사자만 알아듣는 전문용어를 쓰게 됩니다.

제조사가 준 스펙 시트(제품 사양표)를 그대로 옮기면 그렇게 되죠. 틀린 말은 하나도 없는데 읽는 사람 머릿속에 아무 그림이 안 그려집니다.

소비자가 조금이라도 ‘이게 무슨 뜻이지?’ 생각할 여지를 주는 단어를 써서는 안 됩니다.

01번역이 두 종류입니다

알겠는데 안 그려지는 것

고쳐야 할 문장이 두 갈래인데, 처방이 다릅니다.

첫째는 뜻을 몰라서 못 읽는 것입니다. db(데시벨)나 IPX(방수 등급)처럼 업계에서만 통하는 표기죠.

고치기 전 · 단위

64.2db의 저소음 모터

고친 뒤 · 비교 대상

조용한 사무실 정도의 소음

64.2db가 조용한 건지 시끄러운 건지 아는 사람은 드물지만, 비교할 대상을 붙여주면 그 자리에서 알게 됩니다.

둘째는 뜻은 아는데 크기가 안 그려지는 것입니다. 애매한 표현도, 정확한 숫자도 여기 들어갑니다.

고치기 전 · 추상

깃털처럼 가벼운 안경테

고친 뒤 · 구체

500원 동전 무게의 안경테

창가 나무 책상에 놓인 가는 금속 안경테와 그 옆의 동전 한 닢
누구나 손에 쥐어본 무게입니다.

“깃털처럼 가볍다”는 뜻은 압니다. 그런데 얼마나 가벼운지는 안 잡히죠. 깃털을 손에 올려본 사람보다 500원짜리를 쥐어본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고치기 전 · 안 잡힘

17.7L 대용량

고친 뒤 · 잡힘

1L 생수 17병이 들어가는 대용량

17.7리터도 같은 경우입니다. 리터가 뭔지도 알고 숫자도 정확한데, 17.7이 얼마나 큰지가 안 잡힙니다.

생수병으로 바꾸니 잡히죠.

세 예시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소비자가 이미 아는 것에 갖다 붙였죠.

사무실, 생수병, 500원짜리. 전부 누구나 머릿속에 이미 들어 있는 것들입니다.

기준은 이겁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상세페이지를 목표로 카피를 고쳐주세요.

02배치·크기·간격이 좌우합니다

같은 내용인데 한쪽만 읽힙니다

문장을 다 고쳤는데도 안 읽히는 경우가 있는데, PC 화면에서 잘 보이게 만들었을 때입니다.

상세페이지는 모바일 화면에서 가독성 좋게 만들어야 합니다.

책상에 놓인 스마트폰. 화면엔 회색 덩어리로 짜인 뼈대만 보인다
사람들이 보는 화면은 이 크기입니다. 여기서 안 읽히면 없는 글이죠.
상세페이지 가로 배치와 세로 배치 비교
위아래 두 화면의 내용이 완전히 같습니다. 안전하다, 재미있다, 예쁘다, 교육적이다. 위는 네 칸을 가로로 붙였고, 아래는 두 줄로 나눴죠.

특징을 가로로 나열하면 스마트폰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네 칸을 한 줄로 늘어놓지 말고 두 줄로 접으십시오. 글씨 크기를 키워서 소비자가 확대하지 않고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실제 수치를 드리면 이렇습니다. 스마트스토어 상세 기본 폭인 가로 860px로 만든다고 할 때의 기준이고, 이 숫자들은 폰에서 이미지가 줄어들어도 안 뭉개지는 최소선입니다.

본문 · 이 아래론 안 보임

최소 50pt 이상

서브 타이틀 · 중간

60~80pt

헤드라인 · 제일 큼

90~120pt

폰트는 저작권 걱정 없는 무료 폰트면 됩니다. 제목엔 굵고 시원한 G마켓산스, 본문엔 획이 고와 작아도 잘 읽히는 나눔스퀘어가 무난합니다.

그리고 간격입니다. 손가락으로 한 스크롤, 한 스크롤 내릴 때마다 내용이 하나씩 보이게끔 간격을 잡아주셔야 합니다.

글은 짧게 씁니다. 장문의 설명문을 구구절절 읊지 말고 핵심 내용만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써주세요. 조금이라도 필요 없는 글자는 전부 다 빼야 합니다.

03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잘 읽힌다고 사는 건 아닙니다

여기까지 하면 읽히는 상세페이지가 되지만, 읽힌다고 사는 건 아닙니다.

사람이 물건을 사는 이유는 하나가 아니죠. 꼭 필요해서 사는 니즈(기능적 필요) 말고, 갖고 싶어서 사는 원츠(심리적 욕망)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경험이 있으시겠지만 어떤 제품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 않아도 구매합니다. 기능적 필요가 아니라 심리적 욕망을 자극받았기 때문입니다.

마케팅 명언 중 이런 말이 있습니다.

드릴을 팔려면 구멍을 팔아라.

벽에 새로 단 나무 선반과 그 옆에 세워 둔 액자, 바닥에 놓인 드릴
사람들이 산 건 드릴이 아니라 이 장면입니다.

사람들이 드릴을 사는 이유는 돌아가는 뾰족한 송곳이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드릴로 구멍을 뚫어 선반을 달고, 액자를 걸어서 아름다워질 집을 마음속에 그리며 사는 거죠.

제가 페인트 박사 핵트롤이라는 페인트 롤러를 많이 팔 수 있었던 것도, 니즈와 더불어 Before & After를 보여줘 원츠를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핵트롤 상세페이지의 Before After 비교
가운데 줄을 보십시오. Before 벽에 아이 낙서가 있고, After는 하늘색으로 덮여 있습니다. 롤러 성능을 한 줄도 안 쓰고 덮은 다음의 방을 보여줍니다.

기능적 필요만 따지면 핵트롤은 페인트가 흘러내리지 않는 롤러 정도에 불과하죠.

하지만 심리적 욕망을 파고들면 아름다운 집을 만드는 마법의 지팡이가 됩니다.

여기서 하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저는 원츠를 글로 설명하지 않았죠. “당신의 집이 아름다워집니다” 같은 문장을 안 썼습니다.

칠하기 전과 칠한 뒤를 나란히 놓았을 뿐이고, 적힌 말은 「Before & After」 한 줄이 전부입니다. 설명하면 광고가 되고, 보여주면 상상이 되죠.

스펙 다음에 오는 장면이 빠져 있습니다.

스펙은 대개 다 있지만, 그걸 쓰고 난 다음의 장면이 있는지가 갈립니다.

결국 오늘 이야기는 세 가지로 좁혀집니다. 낯선 말을 아는 크기로 바꾸고, 모바일에 맞게 키우고, 스펙 다음의 장면을 보여주는 것.

순서가 중요합니다. 안 읽히면 아무것도 시작이 안 되고, 읽히기만 하면 거기서 끝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