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줄지어 꽂아 둔 종이 카드와 사진들

제품이 아니라 언제 쓰는지를 팝니다

사례 7 : 캐논과 바툼 다섯 사례

2026.07.21.조회 10

최근 제 지인이 카메라 한 대를 샀습니다. 저가 DSLR을 사려고 했는데 최종적으로는 30만 원 더 비싼 캐논사의 EOS m50 미러리스 카메라를 샀다고 합니다.

어째서 처음 계획한 예산을 훌쩍 뛰어넘는 카메라를 샀을까요?

01남의 사례 둘

스펙 보고 고른 게 아니었습니다

이 제품이 내세우는 컨셉은 이거였습니다.

1인 크리에이터에게 최적화된 V-log 카메라

탁상 삼각대에 얹혀 화면을 앞으로 돌려 둔 소형 미러리스 카메라
화면을 앞으로 돌려 세워 두는 자리. 이 카메라가 팔린 자리입니다.

회전이 가능한 후면 디스플레이, 얼굴인식 기능, 자동 밝기 최적화, 우수한 동영상 품질, 가벼운 미러리스 모델. 유튜버들이 브이로그, 곧 영상 일기 촬영에 많이 쓰는 기종이라, 평소 유튜브를 해볼까 생각하던 지인의 마음에 딱 꽂힌 거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예전에 제 밑에서 일하던 직원에게 컨셉이 무엇인지 설명해준 적이 있는데요. 그러자 하는 말이, 집에서 쓰는 캐논 프린터기도 딱 그 컨셉에 이끌려서 산 것 같다는 겁니다.

그 친구가 산 캐논 PIXMA G2910의 컨셉은 이랬습니다. “노즐 막힘이 적은 가정용 무한잉크 프린터기.”

여기가 재밌는 대목입니다. 이 제품은 경쟁사의 무한잉크 프린터기보다 스펙이나 기능의 다양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잉크저장량이 넉넉해서 유지비가 저렴하고, 잉크 분사 기술력이 뛰어나 노즐 막힘과 잔고장이 적다는 혜택이 있죠.

스펙 싸움에서 지는데 팔립니다. 무한잉크 프린터를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즐이 막혀 봤고, 그래서 ‘노즐 막힘이 적다’는 한마디가 정확히 꽂히기 때문입니다.

02그래서 컨셉이 뭔가

제품을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이 산 걸 정확히 적어보면, 카메라도 프린터도 「제품」이 아니라 「그게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유튜버로 데뷔하려는 상황, 노즐 막힘에 데인 상황.

이처럼 내 제품만의 개성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 것이 컨셉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 물건을 언제, 어떤 상황에 쓰는가」를 한 줄로 적은 겁니다.

소비자는 제품 자체를 사지 않습니다. 먼저 제품이 내세우는 컨셉에 이끌리고, 성능을 따져 그 컨셉이 거짓이 아니면 삽니다.

컨셉이 사야 할 이유, 곧 대의명분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그래서 눈길을 끄는 소재를 만들든 상세페이지를 만들든, 모든 콘텐츠에 이 컨셉을 반드시 담아야 합니다.

03제가 판 것 셋

전부 상황에서 나왔습니다

남의 이야기만 하면 안 되니 제 것도 꺼내겠습니다. 셋 다 제가 팔던 물건이고, 전부 제품이 아니라 소비자 상황을 들여다보다 컨셉이 나왔습니다.

첫째는 공기청정기입니다. 대부분 가정은 거실에 큰 공기청정기를 놓고 가족 다 함께 쓰지만, 상황을 들여다보면 각자 방에서 쓸 1인용, 혼자 자취하는 사람이 쓸 원룸용 수요도 큽니다.

제가 팔던 건 가격도 저렴하고 크기도 작아서 방 안에 하나씩 두고 쓰기 좋았죠. 게다가 센서로 실내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해 자동으로 공기를 걸러주는 차별화 포인트까지 있었습니다.

바툼 똑똑한 공기청정기 상품 화면
상품명에 ‘똑똑한’이 들어가 있고, 사용면적은 33㎡, 10평입니다. 크기는 작아도 방 하나는 충분히 맡죠. 컨셉이 이름과 스펙 양쪽에 다 적혀 있습니다.

그래서 컨셉은 이렇게 잡았습니다. “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져다가 쓸 수 있는 똑똑한 1인용 공기청정기.”

둘째는 핫큘레이터, 난방 기구입니다. 소비자 조사를 하다가 재미난 걸 알게 됐는데, 한집 안에서도 빨리 방이 따뜻해지는 온풍기를 원하는 쪽과, 뜨거운 바람은 피부를 상하게 한다며 시간이 좀 걸려도 히터를 원하는 쪽이 갈리더군요.

마침 제가 팔던 핫큘레이터는 온풍기와 전기히터를 합친 제품이었고, 시중에 이런 2 in 1 제품은 없었죠.

바툼 핫큘레이터 상품 화면
상품명 안에 ‘온풍기’와 ‘히터’가 둘 다 들어가 있습니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게 아니라, 둘 다 된다는 걸 이름에서 말합니다.

컨셉은 이렇게 갔습니다. “온풍기를 쓰고 싶은 남편과 히터를 쓰고 싶은 아내를 위한 올인원 난방기.” 쓰는 사람이 둘이면 갈등이 있고, 갈등이 있으면 컨셉이 나옵니다.

셋째는 자동 손세정기입니다. 기계 앞에 손을 대면 세정제를 자동으로 뿌려주는 물건인데, 코로나가 한창일 때 팔았습니다.

그런데 안 팔렸습니다. 소비자가 집이나 사무실에서는 대개 화장실로 가 비누로 손을 닦기 때문입니다.

자동 손세정기 디스펜서 상품 화면
이 물건이 놓인 자리가 카테고리에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생활/건강 › 욕실용품 › 욕실용기/홀더 › 디스펜서. 처음엔 여기서 팔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상황을 더 깊이 파고들었죠. 집에 오자마자 화장실에 가더라도, 바깥에서 세균을 묻혀 온 손으로 문손잡이며 세면대며 여기저기를 만지기 마련입니다. 그럼 아예 현관에 두면 어떨까.

현관 신발장 위에 놓인 자동 손세정기
컨셉을 바꾸자 놓이는 자리가 바뀌었습니다. 화장실에 두면 비누한테 지고, 현관에 두면 이깁니다.

컨셉을 이렇게 바꿨습니다. “세균의 침입을 현관에서부터 차단하는 우리 집 지킴이.” 그러자 팔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제품은 그대로 두고, 놓는 자리를 바꿨을 뿐입니다.

04다섯 개를 나란히

상품명이 말 안 하는 자리

오늘 나온 다섯 개를 한 줄로 놓아보겠습니다.

EOS m50 · +30만 원

미러리스 카메라 → 1인 크리에이터에게 최적화된 V-log 카메라

PIXMA · 스펙 열세

무한잉크 프린터 → 노즐 막힘이 적은 가정용 무한잉크 프린터기

공기청정기 · 거실 → 방

소형 공기청정기 → 어디든 가져다 쓰는 똑똑한 1인용

핫큘레이터 · 갈등

2 in 1 난방기 → 남편과 아내를 위한 올인원 난방기

손세정기 · 화장실 → 현관

자동 손세정 디스펜서 → 세균의 침입을 현관에서부터 차단하는 우리 집 지킴이

왼쪽은 무슨 물건인지, 오른쪽은 그걸 왜 사는지입니다. 대개 「언제 쓰는지」이고, 프린터처럼 「무엇이 걱정인지」일 때도 있죠. 다섯 개 전부 오른쪽이 팔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판 셋은 전부 「이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는가」에서 나왔습니다. 제품 사양서를 들여다보다 나온 게 아닙니다.

그 상황을 찾는 순서가 이겁니다.

1단계 · 왼쪽

지금 상품명을 적습니다. 대개 제품이 무엇인지만 적혀 있습니다.

2단계 · 상황

이 물건을 어디에 두고, 언제 쓰는지 적습니다. 여러 개면 여러 개 다 적습니다.

3단계 · 고르기

그중 경쟁사가 안 말하고 있는 상황을 고릅니다.

4단계 · 컨셉

그 상황을 한 문장으로 적습니다. 그게 오른쪽입니다.

2단계가 제일 오래 걸리는데, 손세정기가 그 단계에서 살았죠. 화장실이라는 답을 처음에 적었고, 현관은 한참 뒤에 나왔습니다.

이 물건, 어디에 두고 언제 씁니까?

답이 하나만 나오면 아직 덜 본 겁니다. 두는 자리와 쓰는 때, 대개 서너 개는 나옵니다.

그래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면, 지인이 30만 원을 더 낸 건 카메라가 더 좋아서가 아닙니다. 유튜브를 해볼까 하던 자기 사정에 그 한 문장이 맞았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