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줄지어 꽂아 둔 종이 카드와 사진들

같은 손님에게 파는 말을 세 번 바꿨습니다

사례 6 : 바툼 욕실난방기

2026.07.21.조회 21

바툼 욕실난방기 라인을 2021년부터 봤는데, 그동안 컨셉을 세 번 새로 잡았습니다. 컨셉이란 「어떤 각도로 파느냐」, 그러니까 상세페이지 맨 위에 내거는 그 한 문장입니다.

그 한 문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먼저 보시죠.

2021 · 기능

추운 겨울철 아이들이 화장실에서 마음껏 물장난 칠 수 있는 완전방수 욕실난방기

2023 · 외부 이슈

난방비 폭탄이 왔으니 저렴한 전기세로 따뜻한 욕실

최근 · 감정

겨울철 아이를 목욕시킬 때 부모가 느끼는 죄책감

세 문장이 전혀 다른데, 사려는 사람은 한 번도 안 바뀌었습니다.

012021 · 기능으로 잡았다

경쟁사에 없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때는 완전방수였습니다. 당시 시중에 저가 제품들은 있었지만 완전방수가 되는 건 없었거든요. 결과는 3,600개, 한 해 겨울철 4억이었습니다.

물방울이 맺힌 욕실 타일 벽에 붙어 켜져 있는 벽걸이 온풍기
물이 튀어도 되는 자리에 걸리는 물건인데, 그때는 그걸 할 수 있는 제품이 드물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제품에 있는 걸 골라 쓴 겁니다. 경쟁사에 없고 우리에겐 있는 기능 하나, 가장 쉬운 자리죠.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가 없어진다는 겁니다. 경쟁사도 방수를 다니까요.

022023 · 바깥에서 온 이슈

그해 겨울에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완전방수라는 기능 자리가 닳아갈 무렵, 마침 바깥에서 사건이 하나 터졌습니다. 러시아가 가스 밸브를 잠근 겁니다. 천연가스가 귀해져서 가격이 뛰었죠. 1년 사이 난방비가 40% 가까이 급등했습니다.

난방비 폭탄으로 난방용품 판매가 급등했다는 당시 뉴스
당시 뉴스입니다. 「난방비 폭탄에 판매량 7배」. 문풍지·핫팩·온풍기 같은 난방용품 매출이 몇 배로 뛰었다는 기사가 쏟아졌죠. 이게 바깥에서 온 이슈입니다.
눈금을 낮춰 둔 보일러 조절기와 그 옆에 접어 둔 고지서, 두꺼운 양말
보일러를 마음껏 못 트는 겨울이 온 겁니다.

그래서 이번엔 제품 안이 아니라 바깥에서 컨셉을 가져왔습니다. 난방비가 무서우니 욕실만 데우자고요.

그해엔 제품을 새로 만들지 않고 앞에 붙는 말만 바꿨습니다. 방수 이야기는 뒤로 내려가고 전기세가 앞으로 나왔죠.

이 각도는 힘이 세지만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난방비 뉴스가 잦아들면 같이 식으니까요.

03최근 · 감정으로 내려갔다

추위를 말하면 다 똑같아집니다

난방비 뉴스가 잦아들자, 더 오래 갈 각도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욕실온풍기를 판다고 하면 누구든 바로 떠올리는 건 「겨울철 욕실 추위」죠. 하지만 그렇게 잡으면 안 됩니다.

왜 안 되는지 보시죠. 탐색 단계(고객이 검색으로 찾아보는 자리)에서는 화장실 추위, 욕실온풍기 키워드로 알릴 것이고, 스마트스토어와 쿠팡에 노출되는 썸네일이나 상세페이지도 타사 제품과 고만고만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경쟁사도 똑같이 「겨울철 욕실 추위」를 필요로 잡고 비슷한 콘텐츠를 만들 테니까요.

그러면 소비자는 굳이 우리 걸 살 이유가 없으니 노출된 것 중에 가장 싼 걸 삽니다. 내가 업계 최저가로 승부하는 자리가 아니면 이길 수 없는 게임이 되는 거죠.

그래서 저와 바툼 임직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시장조사를 했고, 고객의 필요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겨울철 아이를 목욕시킬 때 부모가 느끼는 죄책감

김이 서린 욕실에 준비해 둔 아기 욕조와 수건, 오리 인형
추운 욕실에서 아이가 겪는 목욕, 그리고 아이가 목욕을 거절할 때 부모가 느끼는 마음. 그걸 진짜 필요로 봤습니다.

추운 욕실에서 아이가 겪는 불쾌한 목욕 경험, 그리고 아이가 목욕을 거절해서 생기는 어머니의 스트레스와 죄책감. 그걸 진짜 필요로 봤습니다.

필요가 바뀌자 키워드가 따라 바뀌었습니다. 화장실 추위가 아니라 아이 목욕, 육아 욕실이 됐죠.

콘텐츠에 들어가는 재료도 달라졌습니다. 아이를 위한 1초 발열, 그리고 부모가 혹할 무타공 설치(벽에 구멍 안 뚫고 붙이는 방식), 5년 AS가 들어갔습니다. 이 재료들을 담아 제품도 4.0 세대로 넘어갔고요.

바툼 욕실 온풍기 4.0 상품 화면
최근 제품인 욕실 온풍기 4.0입니다. 2021년의 램프 셋짜리와는 생김새부터 다르죠. 상품명엔 아직 「화장실 온풍기」가 남아 있습니다. 검색으로 들어오는 문은 그대로 열어둔 겁니다. 바꾼 건 그 아래 상세페이지, 곧 설득하는 말이고요.

10억

죄책감 컨셉으로 낸 4.0 · 2025년 겨울 4달

제품도 그새 진화했지만, 그 숫자를 끌어올린 건 결국 각도였습니다.

04세 번을 관통한 것

바뀐 건 사람이 아니라 각도였습니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게 있습니다. 컨셉을 세 번 갈았으니 고객도 세 번 바꿨겠거니 하는 건데, 아닙니다. 2021년 기록에 이미 이렇게 적혀 있거든요.

아이를 둔 3040 부모님

2021년에 적은 타깃 · 다세대 주택 · 단독주택 · 빌라 거주

물장난도, 난방비도, 죄책감도 전부 이 사람 이야기입니다. 아이를 씻겨야 하고, 집 화장실이 춥고, 난방비가 걱정되는 사람.

컨셉을 새로 잡는다는 건 다른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같은 사람의 어느 대목을 건드릴지 다시 정하는 겁니다.

그럼 그 「다른 대목」으로 언제 갈아타야 할까요. 각도를 바꿔야 할 때는 대개 신호가 먼저 옵니다.

신호 ① · 기능이 닳음

경쟁사 상세페이지가 우리와 비슷해졌다. 우리만 있던 기능이 이제 다 있다.

신호 ② · 최저가 게임

가격을 물어보는 문의가 늘었다. 비교 기준이 값만 남았다는 뜻이다.

신호 ③ · 각도 교체

바깥에 사건이 생겼다. 우리 고객이 겪는 일이 달라졌다.

위 신호 중 하나라도 보인다면, 지금이 그때입니다. 그럼 대표님 컨셉으로 직접 한 번 해보시죠.

1단계 · 현재

지금 컨셉을 한 문장으로 적습니다. 못 적으면 그것부터가 문제입니다.

2단계 · 점검

경쟁사 상세페이지 맨 위와 나란히 놓습니다. 비슷하면 각도를 바꿀 때입니다.

3단계 · 각도

타깃은 그대로 두고 그 사람이 겪는 다른 대목을 찾습니다.

4단계 · 키워드

새 컨셉에 맞춰 키워드부터 다시 정합니다. 문장만 바꾸고 키워드를 그대로 두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4단계가 실제로 제일 많이 빠지는 자리입니다. 상세페이지 문구는 고쳤는데 걸어둔 키워드가 그대로면, 여전히 추위를 찾는 사람만 들어오니까요.

이 문장, 3년 전에 쓴 겁니까?

그때 맞았다고 지금도 맞는 건 아닙니다. 3년 전 그 문장이 지금 시장에서도 통하는지, 오늘 기준으로 다시 봐야 합니다. 안 그러면 다음은 가격 싸움이니까요.

컨셉은 한 번 잡고 끝나는 게 아니라서, 제품이 몇 번 바뀌는 동안에도 그때마다 컨셉을 따로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