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장난감을 팔 일이 많다 보니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빌려온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칼라마법사라는 제품인데,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실리콘 클레이였습니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라바>의 캐릭터를 입혔는데, 그 캐릭터를 빌리기까지가 오늘 이야기입니다.
문 앞에서 막혔습니다
이미 하는 데가
있다고 했습니다
라바 제작사인 투바앤을 찾아가 라이센스 제휴를 요청했습니다.
소재와 궁합이 잘 맞으니까 꼭 캐릭터를 활용하고 싶다고 제안했습니다.
돌아온 답은 이거였습니다.
"이미 라바 클레이를
만드는 업체가 있는데요."
거절 사유가 명확합니다. 겹친다는 겁니다. 여기서 대부분 돌아섭니다.
보통은 여기서 끝나죠. 이미 있다는데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거절에는 전제가 하나 깔려 있습니다. 내 제품과 그 업체 제품이 같은 칸에 있다는 전제죠.
그 전제를 건드리면 됩니다.
첫 번째 문장
그냥 클레이가
아닙니다
그래서 설득을 했고, 첫 문장이 이거였습니다.
첫 번째 문장
"우린 그냥 클레이가 아니라 실리콘 클레이라서
카테고리가 겹치지 않는다"
보십시오. 거절 사유를 반박한 게 아닙니다. 거절 사유가 성립하는 칸 자체를 다시 그린 겁니다.
상대는 클레이라는 칸을 보고 있었고, 저는 실리콘 클레이라는 칸을 새로 꺼냈습니다.
이게 소비자에게 쓰던 논리인데, 큰 키워드에서 못 이기면 좁은 키워드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점은 하나뿐입니다. 그 논리를 소비자가 아니라 상대 회사에 썼다는 것.
다만 이건 말장난이면 안 됩니다. 실제로 소재가 달랐고, 그래서 만들어지는 물건이 달랐거든요. 없는 차이를 지어내면 그 자리에서 들킵니다.
두 번째 문장
화나면
빨개지지 않냐
첫 문장으로 문은 열었지만, 열었다고 들어가지는 건 아닙니다.
안 겹친다는 건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지, 허락할 이유가 있다는 뜻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두 번째 문장이 필요했습니다.
두 번째 문장
"너네 라바가 화나면 빨개지지 않냐?
우리는 그걸 똑같이 구현할 수 있다"
이 문장은 내 제품 자랑이 아닙니다. 상대 캐릭터의 특징을 말하고 있죠.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실리콘. 화가 나면 빨개지는 캐릭터. 이 둘이 겹치는 자리가 있습니다.
겹치는 자리
색이 변한다
빨개진다
손에 쥐면 빨개지는 라바
여기가 중요합니다. 내 제품에도 있고 상대에게도 있는 것을 찾은 겁니다.
이걸 연결고리라고 부르는데, 캐릭터를 빌려오려면 제품을 보고 그 캐릭터를 연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연결고리가 없으면 캐릭터를 붙여도 스티커에 그칩니다. 있으면 캐릭터가 제품의 기능을 설명해주죠.
그래서 어떻게 됐나
9월에 계약하고
12월 말에 터졌습니다
두 문장으로 라이센스를 얻었고, 그다음은 빨랐습니다.
9월
11월
12월 말
이 제품 하나로만 1년에 30억 매출을 올렸습니다.
날짜를 다시 보십시오. 12월 말입니다. 완구는 크리스마스에 팔리니, 9월 계약은 그 날짜를 맞춘 겁니다.
거절당한 자리에서 물러났으면 그해 크리스마스는 없었습니다. 다음 기회는 1년 뒤였고요.
캐릭터가 하는 일
아이들은 우리 제품을
모릅니다
왜 이렇게까지 캐릭터에 매달렸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냉정하게 보면 이렇습니다. 중소기업이 만든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실리콘 클레이를 사람들이 얼마나 사주겠습니까.
아이들이 칼라마법사는 모르지만 라바는 너무나 잘 압니다. 그래서 신제품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랐죠.
라바는 애들과 학부모 중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머릿속에 한 층 더 쉽게 자리를 잡습니다.
여기서 짚을 게 있습니다. 아는 쪽이 아이입니다. 돈은 부모가 내지만, 캐릭터를 알아보는 건 아이거든요.
덤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제품을 넘어서 캐릭터를 소유하는 느낌을 받으면 만족도가 높아집니다.
그럼 가치가 올라가고, 결과적으로 객단가가 오르며 반품이 적어집니다.
같은 물건인데 더 비싸게 팔리고 덜 돌아온다는 뜻이죠.
대표님 차례입니다
빌릴 게
캐릭터만은 아닙니다
캐릭터 라이센스는 아무나 딸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저도 거절부터 당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신 두 문장은 캐릭터에만 쓰는 게 아닙니다.
납품처든 공동구매든 입점 제안이든, 거절당하는 이유는 대개 하나입니다. "이미 비슷한 데가 있어서요."
그때 확인하실 게 둘입니다.
둘째가 어렵습니다. 대개 내가 뭘 얻을지만 준비해 갑니다.
그런데 통한 문장은 상대 캐릭터의 특징을 말한 문장이었습니다. 내 제품 얘기가 아니었죠.
거절은 대개 칸을
잘못 잡아서 옵니다.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나를 남과 같은 칸에 넣어놨기 때문입니다. 칸을 다시 그리면 답이 달라집니다.
오늘 하실 건 하나입니다. 최근에 거절당한 제안을 하나 떠올려보십시오.
그때 상대가 뭐라고 했는지, 그리고 그 말에 깔린 전제가 뭐였는지 적어보시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