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줄지어 꽂아 둔 종이 카드와 사진들

네 칸 중 하나도 없으면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사례 13 : 제품 선별 기준

2026.07.21.조회 5

제품 제안이 들어오면 저는 네 가지부터 체크합니다.

베스트셀러가 될 만한 제품에는 차별화 포인트가 있는데, 제가 체크하는 그 네 가지가 곧 차별화 포인트죠.

① 새로운 기능

없던 것

② 기존의 불편함을 개선

있는데 불편

③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같은데 싸다

④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자기과시

보여주고 싶다

하나씩 보겠습니다.

01① 새로운 기능

없던 것이거나 하나를 더 붙인 것

새로운 기능은 여태 시장에 아예 없던 제품이거나, 혹은 연필 지우개처럼 기존 제품이 가진 기능에 또 하나의 기능을 넣은 제품을 말합니다.

책상 위에 흩어 놓은 연필들. 끝마다 지우개가 붙어 있고 그 옆에 따로 노는 지우개 하나
둘 다 원래 있던 물건입니다.

연필 지우개가 좋은 예입니다. 연필도 있었고 지우개도 있었는데, 둘을 붙였을 뿐이죠.

그런데 그게 팔립니다. 지우개를 따로 챙길 필요도, 굴러다니다 잃어버릴 일도 없으니까요.

제가 팔았던 필모아 텀블러도 그랬습니다. 텀블러야 이미 세상에 넘쳐났죠. 그런데 필모아는 거기에 세 가지를 얹었습니다. 하루 종일 안 채워도 되는 대용량 900ml, 아침에 담은 커피가 오후까지 안 식는 보온보냉, 가방에 눕혀 넣어도 안 새는 완전밀폐. 텀블러를 쓰며 겪던 자잘한 불편을 하나씩 지운 거죠. 그것만으로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필모아 텀블러 상세 스펙 - 900ml, 보온·보냉, 진공구조
필모아 텀블러 스펙입니다. 용량 900ml · 보온·보냉 · 진공구조. 방금 말한 세 기능이 그대로 찍혀 있죠.

없던 걸 발명하지 않아도 이 칸에 들어갑니다. 있는 것에 하나를 더 붙이면 되거든요. 지금 파는 물건에 사람들이 아쉬워하던 기능 하나를 얹어보세요. 필모아의 대용량이, 연필 끝의 지우개가 그렇게 나왔습니다.

02② 기존의 불편함 개선

써보기 전엔 불편한 줄도 모릅니다

써보기 전에는 불편한 줄도 몰랐던 것들이 있습니다. 누가 없애주고 나서야 아, 저게 불편했구나 합니다.

제가 판 것 중에도 이 칸이 있습니다. 페인트 박사 핵트롤이라는 셀프 인테리어 제품이죠.

페인트칠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롤러에 페인트를 묻히면 줄줄 흐르고 뚝뚝 떨어져서, 방 전체에 비닐을 깔고서야 칠할 수 있죠.

핵트롤은 롤러가 손잡이 통 안에서 페인트를 머금고 나오는 구조입니다. 통에 페인트를 채워두면 롤러가 그걸 빨아올려 벽에 바르니, 붓에 다시 찍을 일도 바닥에 흘릴 일도 없죠. 덕분에 소비자 반응이 좋았습니다.

핵트롤로 셀프 페인팅한 방과 가구의 before/after
핵트롤로 직접 칠한 before / after입니다. 방에 비닐 한 장 안 깔고도, 벽도 가구도 이렇게 깔끔하게 바뀝니다.

이 칸은 써본 사람만 압니다. 페인트를 한 번도 안 칠해본 사람은 비닐 까는 게 불편한 줄도 모르거든요. 그래서 이 불편은 리뷰에서 찾습니다.

내 카테고리 상품평에 ‘이게 불편했다’는 말이 반복되면, 거기가 바로 이 칸의 자리입니다.

03③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설계된 값과 밀린 값은 다릅니다

①과 ②는 당연히 품질로 승부하는 쪽입니다. 그런데 품질이 좀 떨어져도 가격이 저렴해서 대박이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흔히 가성비가 좋다는 제품이죠.

2020년, 코로나19가 막 터졌을 때 저는 휴대용 포켓 손소독제를 팔았습니다. 무서운 기세로 팔려나갔는데요.

벤치에 기대 둔 무지 캔버스 가방 끈에 고리로 걸어 둔 작은 손소독제 통
가방 끈에 걸어 두고 다니는 물건입니다. 값이 부담되면 애초에 걸어 두지 않죠.

트렌드 영향도 있었고, 제품 자체가 다른 손소독제와 비교했을 때 거의 30~50% 더 저렴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여기서 헷갈리기 쉬운 게 하나 있습니다. 가격이 차별화라면, 가격 싸움은 왜 나쁜가 하는 거죠. 저는 싼 가격을 두 가지로 나눕니다. 설계해서 내려간 값과 밀려서 내려간 값입니다.

설계된 가격

싸게 팔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들어간다

밀린 가격

내세울 게 없어서 값을 깎는다

포켓 손소독제의 30~50%는 설계된 값입니다. 대량으로 싸게 떼오고 포장·유통을 줄여서, 그 가격에도 마진이 남도록 미리 짜두고 들어간 거죠.

반대로 아무 차별화가 없어서 값밖에 내릴 게 없는 상태는 차별화가 아니죠. 그건 그냥 밀린 겁니다.

04④ 자기과시

기능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삽니다

마지막은 자기과시 제품입니다. 대표적으로 스포츠카, 명품 핸드백, 최신형 아이폰을 꼽을 수 있겠네요.

이 제품들은 기능도 기능이지만 남의 시선을 의식해 자랑하려고 사는 제품입니다.

제 것 중에는 다회용 빨대 카멜로우가 여기 해당하죠.

카페 나무 탁자에 놓인 다회용 빨대와 세척솔, 그 옆의 물잔
남 앞에서 꺼내는 자리에 놓이는 물건입니다.

사람들이 왜 친환경 제품을 사는지 아십니까? 지구를 생각하는 마음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남에게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소비자’로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죠.

둘 중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둘 다 있거든요. 그래서 이 칸이 성립합니다.

그래서 이 칸의 제품은 남에게 보일 때가 기준입니다. 혼자 쓸 때가 아니라 꺼내 보일 때를 생각해 디자인하고, 상세페이지도 ‘이걸 쓰는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팔아야 하죠. 기능만 늘어놓으면 이 칸은 안 열립니다.

05그래서 몇 개면 되나

넷을 다 가진 제품은 못 봤습니다

이 네 가지는 베스트셀러가 될 씨앗입니다. 여러 개가 겹칠수록 대박 확률이 올라가죠.

0개 · 안 받음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1개 · 받아본다

그것 하나로 갈 수 있는지 봅니다

2개 · 해볼 만함

많이 다뤄봤습니다

3개 · 드묾

극소수였습니다

4개 · 본 적 없음

"심봤다!"를 외치시면 됩니다

그동안 300개 넘게 출시해봤지만, 이 4가지를 전부 한 몸에 가진 제품은 아쉽게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넷을 다 찾으려고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둘이면 충분히 해볼 만하죠. 포켓 손소독제는 ③ 하나뿐이었고, 거기에 코로나라는 때가 겹쳤을 뿐입니다.

문제는 0개입니다.

저는 지금도 다양한 제품을 제안받는데요. 이 4가지 포인트 중 하나도 없는 제품은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런 제품은 해봤자 가격 싸움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앞에서 말한 그 밀린 가격이죠. 설계해서 내려간 게 아니라 내세울 게 없어서 내려가는 거라, 그 싸움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요즘 1년에 열 개 남짓만 받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많이 던져봐서가 아니라, 받을 만한 것만 골라 받기 때문이죠.

하나도 안 들어가면 거절해도 됩니다.

그 제품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팔 방법이 값을 깎는 것밖에 안 남죠.

대표님도 거절하셔도 됩니다. 받아놓고 고생하는 것보다 안 받는 게 낫죠.

제안이 아니라 이미 팔고 있는 물건이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0개로 나왔대도 버리라는 게 아니라, 넷 중 하나를 만들어 붙이라는 뜻이죠. 기능 하나, 편함 하나, 자랑거리 하나 중 무엇을 얹을 수 있는지 보세요. 연필 지우개가 그렇게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