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서, 고객이 '왜 누르는가'(④ 클릭)를 잡았습니다.
클릭해 들어온 고객은 곧바로 비교를 시작합니다. 오늘은 그 다섯 번째 단추, ⑤ 비교죠. 고객은 창을 여러 개 띄워놓고 견줍니다. 이때 내 상품이 '그 카테고리의 여러 개 중 하나'로 보이면, 남는 건 하나뿐입니다. 가격 싸움이요.
혹시 이런 상황, 겪고 계신가요
- 결국 가격 싸움만 남는다
- 경쟁사와 상세페이지 설명이 똑같다
- 비교당하면 진다
그래서 비교에서 이기는 길은 둘입니다. 남들보다 더 잘하거나, 아예 비교당하지 않거나. 오늘은 두 번째 길을 보겠습니다. 제품을 하나도 안 바꾸고도 가능하거든요.
줄 세워진다
사라진다
사례 1 · 바툼 얼굴솜털제거기
미국에서 1,000만 개 팔린 제품이,
한국에선 재고가 됐습니다
아는 사장님이 미국에서 1,000만 개 넘게 팔린 여성용 면도기를 수입했습니다. 거기서 대박이 났으니 여기서도 되겠다 싶었던 거죠. 그런데 똑같이 '여성용 면도기'로 내놓으니, 판매량이 시원찮았습니다. 재고만 쌓여갔고요.
이유는 인종과 문화였습니다. 미국은 털이 많은 편이고 여성이 면도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반면 한국은 털도 적고, '면도하면 털이 더 굵어진다'는 고정관념까지 있어서 할 사람만 하는 작은 시장이었죠. 해외에서 잘 팔렸다고 국내에서도 팔린다는 보장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컨셉을 다시 잡기로 하고, 시장조사부터 새로 시작했습니다. 면도와 제모 관련 키워드를 쭉 훑는데, 유독 '얼굴 솜털 제거', '인중 솜털 제거' 검색이 많았습니다. 찾아보니 이런 솜털은 실면도로 없애는데, 아프고 피부에도 민감하다더군요. 그게 싫으면 페이스 왁싱을 받아야 하고요.
여기서 막혔습니다. 저는 남자라 실감이 안 났거든요. 그래서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답이 뜻밖이었습니다.
"얼굴에 솜털이 많으면
화장이 뜨잖아."
화장을 잘 먹으려면 솜털을 없애야 한다는 겁니다.
남자와는 면도하는 이유 자체가 달랐던 겁니다. 남자에게 면도는 '정리'지만, 여자에게는 '화장발'이었습니다. 이 한마디에서 컨셉이 나왔습니다.
당시 시장에 '솜털제거기'라는 카테고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굴 솜털을 어떻게 없애지'를 찾는 검색은 꾸준히 있었죠. 카테고리가 없는데 수요는 있다. 그러면 내가 그 카테고리의 1번이 될 수 있습니다. 주변 여성들에게 제품을 나눠주고 실제로 그 역할을 하는지 확인한 뒤, 이름을 바꿔 달았습니다.
이미 큰 회사들이 있는 자리
아무도 없던 자리
컨셉은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화장발을 잘 받을 수 있게 얼굴의 잔솜털을 제거해주는 얼굴솜털제거기.' 그리고 이 한 줄에 맞춰 콘텐츠를 전부 새로 만들었습니다.
경제적
페이스 왁싱은 주기적으로 매장에 가야 합니다. 이건 한 번 사면 끝이죠.
휴대성
파우치에 넣고 다니다 화장하기 전에 바로 밀 수 있습니다.
금 도금
피부에 닿는 날을 금으로 도금해 모낭염 걱정을 없앴습니다.
오해 정정
안 팔리게 만들었던 '면도하면 굵어진다'는 그 고정관념을, 상세페이지에서 정면으로 풀었습니다.
결과는 1년에 5만 개 넘게, 약 15억. 그리고 재미있는 건, 없던 검색어가 생겨났다는 겁니다.
마케팅을 잠시 쉬자 검색량이 다시 가라앉고, 재개하자 또 올라갑니다. 카테고리가 저절로 생긴 게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는 증거죠.
제품이 바뀐 게 아닙니다.
제품을 보는 눈이 바뀌었습니다.
사례 2 · 테라섹트
제품이 완전히 똑같을 때는,
제품 밖에서 이깁니다
이번엔 이름조차 바꿀 수 없는 경우입니다. 미국 월마트에서 100만 개가 팔린 변신 자동차 완구 테라섹트를, 아는 사장님이 본사와 계약해 정식 수입했습니다. 한동안은 편했습니다. 독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잘 팔리기 시작하자, 똑같은 제품을 해외직구로 더 싸게 파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차별화가 필요 없던 상황에서, 갑자기 차별화가 필요해진 겁니다. 문제는 제품이 완전히 똑같다는 것이었죠. 기능도, 디자인도요.
그래서 제품이 아니라 제품 밖을 봤습니다. 공식 수입과 해외직구는 무엇이 다른가.
빠른 배송
직구는 몇 주가 걸립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장난감을 지금 당장 갖고 놀고 싶어 하죠.
정식 수입AS
리모컨으로 굴러다니는 RC카라 고장이 납니다. 직구는 AS가 안 되고, 새로 사도 또 몇 주죠.
콜센터 보유이 두 가지를 상세페이지에 넣고, 썸네일에는 '정품' 두 글자를 박았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가격이 더 비싼데도, 소비자들은 정품을 골랐습니다. 싸다고 이기는 게 아니었던 겁니다. 고객이 진짜 걱정하던 건 '얼마'가 아니라 '고장 나면 어쩌지'였으니까요.
사례 3 · 반짝커
어느 카테고리에 서느냐가,
가격을 정합니다
3편에서 잠깐 만났던 반짝커, 기억하시나요. 그때는 '시장을 나중에 찾아 고생한 쪽'으로 잠깐 스쳤는데, 오늘은 그 고생을 어떻게 뒤집었는지가 주제입니다.
제조사 대표님이 영국 백화점에서 포일아트를 보고 벤치마킹해 만든 제품이었습니다. 검은 판에 반짝이는 필름을 문질러 붙여 스테인드글라스 느낌을 내는 놀이죠. 롯데마트 입점까지 시켰는데 도무지 안 팔렸습니다.
제품이 나쁜 게 아니었습니다. 설 자리가 없었던 겁니다.
2층이 왜 막다른 길이었는지가 중요합니다. 스티커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문방구에서 몇백 원 하는 것이죠. 스티커라는 카테고리에 있는 한, 값을 올릴 수가 없습니다. 제조원가도 안 나오는 자리였던 겁니다.
그래서 심어둔 자리를 뽑아 세 번째 땅으로 옮겼습니다. 색칠놀이 시장은 스티커보다 크고, 완구 겸 교구로 볼 수 있어 값을 받을 명분이 있었으며, 포일아트 방식은 그 안에 경쟁자가 없었습니다. 세 조건이 처음으로 다 맞은 자리였죠.
여기에 결정적인 한 수가 더해졌습니다. 종이접기의 김영만 선생님을 모신 겁니다.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권위자가 추천하는 교구가 되자, 구성을 화려하게 채워 한 세트 29,900원이라는 값이 성립했습니다.
결과는 출시 1년이 채 되지 않아 순이익 10억. 브랜드 인지도가 전혀 없던 무명의 포일아트 제품이 낸 숫자입니다.
오늘 세 사례를 세 사례가 말하는 건 하나입니다.
세 사례 모두 제품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바꾼 건 서 있는 자리였습니다. 비교에서 이기려고 스펙을 하나 더 얹기 전에, 먼저 물어보셔야 할 게 있습니다. 나는 지금 누구와 나란히 놓여 있는가.
그러니 오늘, 대표님 상품을 검색해보세요.
"나는 지금 누구 옆에 서 있는가?"
다음 편 예고 · 7편 ⑥ 전환
자리를 잡았으면 이제 상세페이지에서 결판이 납니다. 제조사가 준 건 스펙 10개뿐이었습니다.
'64.2dB'를 '조용한 사무실'로. 스펙을 편익으로 번역하는 공식이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커뮤니티엔 이미 수많은 개선 사례가 쌓여 있습니다. 대표님 상품에 그대로 대입해보세요.
셀러박사는 누구인가
겨울 4달 10억, 운이 아니라 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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