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으셨네요."
제 매출을 보면 사람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처음엔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업종을 가리지 않고 상품을 기획해 팔아보니, 잘 팔린 제품에는 예외 없이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대단한 재능도, 큰돈도 아니었습니다. 순서였습니다.
아래는 제 손을 거쳐 간 제품들입니다. 텀블러, 난방기, 어린이 완구, 판촉 달력. 업종도 가격도 고객도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팔린 방식만은, 이상하리만치 같았습니다.
보시다시피, 제품이 특별해서 팔린 게 아닙니다. 텀블러는 스타벅스가 꽉 쥔 시장이었고, 얼굴솜털제거기는 원래 안 팔리던 여성용 면도기였습니다. 반짝커는 롯데마트에 넣어도 안 팔리던 물건이었고, 달력은 누구나 만드는 흔한 판촉물이었죠. 그런데 전부 팔렸습니다.
제품을 바꾼 게 아닙니다.
파는 순서를 바꿨습니다.
고객이 물건을 구매까지는 정해진 길이 있습니다. 왜 사는지(필요)부터 시작해, 어떻게 찾고(접점), 어디서 만나고(노출), 왜 누르고(클릭), 왜 고르고(비교), 왜 결제하고(전환), 왜 또 사서 남에게 권하는지(리뷰)까지. 이 일곱 단계를 저는 구매전환 7단계라 부릅니다.
물통을 떠올려 보세요. 판자 하나가 낮으면, 아무리 다른 판자가 높아도 물은 가장 낮은 판자 높이까지만 찹니다. 매출도 똑같습니다. 상품이 아무리 좋아도, 일곱 단계 중 한 곳이 막혀 있으면 거기서 물이 샙니다. 광고비를 아무리 부어도 첫 매출을 못 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글로 늘어놓으면 와닿지 않죠. 그래서 이 일곱 단계가 실제로 어떻게 맞물리는지, 아까 맨 앞에 있던 필모아 텀블러 40억짜리로 처음부터 따라가 보겠습니다. 일곱 단계 중에서도 이 제품은 세 지점이 승부처였습니다. 왜 사는지(①필요), 왜 고르는지(⑤비교), 왜 다시 사고 권하는지(⑦리뷰). 이 셋을 어떻게 풀었는지 보시죠.
① 필요 · 왜 사는가
절대강자 스타벅스를 피해,
아무도 안 보던 곳을 봤습니다
텀블러 시장에는 스타벅스라는 절대 강자가 있었습니다. 주 고객층은 여성인데, 이들은 텀블러를 감성적으로 소비합니다. 음료를 담는 기능보다는 감성적인 패션 악세사리로 보는 것이죠. 여기에 정면으로 뛰어드는 건, 골리앗에게 돌팔매도 없이 달려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반대로 갔습니다. 감성이 아니라 이성을 공략했습니다. 타깃은 사무실에서 작은 종이컵을 들고 정수기에 물 뜨러 가기 귀찮은 직장인 남성. 이들의 필요는 '텀블러가 갖고 싶다'가 아니었습니다. '물 뜨러 가기 귀찮다'는 하루의 짜증 한 장면이었죠. 제품이 아니라, 그 짜증을 판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곧바로 ⑤비교가 갈렸습니다. 그들에게 대용량, 보온보냉, 밀폐성 기능에 투박한 스테인리스 재질을 입혔습니다. 예쁘지 않은 것, 그게 차별화였습니다. 스타벅스가 예쁘니까요. 필요와 비교가 한 번에 결정된 셈입니다.
예상은 적중했고, 히트를 쳤습니다. 그런데 판매가 시작되자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후기를 조사하다 알게 됐는데, 남성을 겨냥해 만든 제품인데 여성 구매가 많았던 겁니다. 정수기에 물 뜨러 가기 귀찮은 건, 여자도 마찬가지였던 것이죠.
그래서 화사한 색을 입혀 필모아 마카롱 텀블러를 냈습니다. 타깃을 좁힌 건 옳았지만, 좁힌 진짜 축은 '성별'이 아니라 '사무실'이었다는 걸, 고객이 알려준 셈입니다.
여기까지가 필요와 비교였습니다. 이렇게만 해도 히트 상품은 됩니다. 하지만 한 번의 히트가 40억이 되려면, 한 가지가 더 필요했습니다. 산 사람이 또 사고, 남에게 권하게 만드는 것. 마지막 단계, ⑦리뷰입니다.
⑦ 리뷰 · 왜 또 사고, 남에게 권하는가
말로 하면 안 믿습니다.
그래서 튀김기에 넣었습니다
필모아 텀블러는 보온 12시간, 보냉 24시간이 강점이었습니다. 문제는 이걸 말로 하면 아무도 안 믿는다는 것. 어떻게 임팩트 있게 보여줄까 고민하다, 이렇게 했습니다.
텀블러에 얼음을 잔뜩 넣고 튀김기에 튀기고, 끓는 물에 담그고,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렸습니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 얼음이 여전히 녹지 않았다는 걸 보여드렸습니다. 백 마디 설명보다 이 장면 하나가 강했습니다.
광고를 의심한 고객이,
직접 삶아봤습니다.
그리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후기를 올려주셨습니다.
한 고객이 '진짜 안 녹나?' 의구심이 들어, 텀블러에 직접 얼음을 담아 물에 삶아봤다는 겁니다. 진실을 확인하고 만족도가 오르자,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그 후기를 직접 공유해주셨습니다. 제가 만든 광고가 아니라, 고객이 만든 광고였습니다.
여기에 운도 따랐습니다. 언젠가부터 JTBC 〈아는 형님〉에 이상민 씨가 필모아 텀블러를 들고 나왔습니다. 협찬을 한 것도 아닌데요. 그러자 인터넷에 '이상민 텀블러'를 찾는 사람이 생겼고, 저는 그날로 상세페이지에 그 내용을 반영했습니다. 운이 왔을 때, 흘려보내지 않은 것입니다.
시연으로 의심을 지우고, 고객이 직접 검증해 후기를 남기고, 방송으로 이름까지 퍼졌습니다. ⑦리뷰가 이렇게 채워진 겁니다. 그리고 신뢰가 이만큼 단단해지면, 그다음은 놀랍도록 쉬워집니다.
확장 · 하나가 여섯이 되다
텀블러 하나에서
라인업이 뻗어나갔습니다
제품은 옆으로, 또 위로 뻗었습니다. 텀블러 하나에서 마카롱 텀블러, 블랙레이블 텀블러, 필스텐 맥주컵, 탱커, 냉장박스까지. 하나의 성공이, 여섯 개의 라인업이 되었습니다. 첫 도미노가 넘어가자, 나머지가 줄줄이 넘어간 겁니다.
정리하면, 필모아 텀블러는 우연히 터진 게 아니었습니다. 필요를 다시 정의하고(①), 이성으로 차별화하고(⑤), 시연과 후기로 신뢰를 만들고(⑦), 라인업으로 확장하는 순서를, 하나씩 밟은 결과였습니다.
① 필요감성이 아니라 이성, 여성이 아니라 직장인 남성으로 타깃을 다시 정의했습니다.
⑤ 비교대용량·보온보냉·밀폐성. 스타벅스가 말하지 않는 것을 앞세웠습니다.
⑦ 리뷰튀김기·끓는 물의 임팩트 영상과 '직접 삶아본' 후기가 '이상민 텀블러'라는 검색어를 만들었습니다.
확장하나의 성공이 6종으로 뻗어, 매출이 몇 배가 되었습니다.
한 단계씩 밟으면,
운은 원리가 됩니다.
맨 앞에서 보여드린 욕실온풍기도, 반짝커도, 흔한 판촉 달력 하나까지 전부 이 순서였습니다. 업종이 달라도, 가격이 달라도 원리는 똑같이 작동했습니다. 그리고 이 원리는, 대표님 상품에도 똑같이 통합니다. 제가 특별해서 만든 숫자가 아니라 원리가 만든 숫자이고, 원리는 배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한 편에 다 담지 않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9편에 걸쳐 일곱 단계를 하나씩, 실제 실적 사례로 열어드리겠습니다. 그 사례들을 그냥 읽고 넘기지 마시고, 대표님 상품에 하나씩 대입해보세요. 오늘 필모아의 ①필요를 대표님 상품의 ①필요 자리에, ⑤비교를 ⑤비교 자리에 바꿔 넣는 겁니다. 그렇게 일곱 칸을 채우고 나면, 다음 실적 캡처의 주인공은 대표님이 됩니다.
앞으로 여덟 편에 걸쳐 이 7단계를 하나씩 열어봅니다
오늘 1편은 전체 지도였습니다. 다음 편부터는 각 단계를, 실제 사례로 깊이 들어갑니다.
- 2편 ①필요 · 난방기가 아니라 육아맘의 죄책감으로 팔았더니 겨울 한 시즌 10억
- 3편 ②접점 · 같은 상품, 키워드 하나로 전환율 7.7배
- 4편 ③노출 · 광고를 끄는 순간 0이 되는 '송곳 그래프'
- 5편 ④클릭 · 썸네일에 강아지 한 마리 넣었더니 클릭 1.5배
- 6편 ⑤비교 · 제품은 그대로, 이름만 바꿨더니 1년에 5만 개
- 7편 ⑥전환 · 64.2dB를 '조용한 사무실'로, 스펙을 편익으로
- 8편 ⑦리뷰 · 내가 백 번 말하는 것보다 남의 후기 하나
- 마지막그리고 특별한 마지막 편이 준비 중입니다
매출은 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원리로 만듭니다.
다음 편 예고 · 2편 ① 필요
같은 난방기를 '추위'가 아니라 '육아맘의 죄책감'으로 팔았더니, 겨울 한 시즌 10억.
제품은 하나도 안 바꿨습니다. 파는 '이유'만 바꿨습니다. 그 이야기가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커뮤니티엔 이미 수많은 개선 사례가 쌓여 있습니다. 다음 편도 여기서 가장 먼저, 대표님 상품에 그대로 대입해보세요.
셀러박사는 누구인가
겨울 4달 10억, 운이 아니라 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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