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연재 · 21화 · 밧드용 진공 뚜껑 · ABC주스

노쇼 때문에 고기를 버렸습니다.

그래서 뚜껑을 만들었습니다. 브랜드 스토리는 거창한 사명이 아니라 손해 본 날에서 나옵니다.

브랜드 스토리를 쓰라고 하면 대개 회사 소개서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 고객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최고의 품질을 만든다는 식의 이야기 말입니다.

그런 글은 아무도 안 읽습니다. 제가 본 잘 팔리는 스토리는 대개 구체적인 사건 하나에서 출발합니다.

스토리텔링에는 개발자 브랜드 스토리와 판매자 브랜드 스토리 2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둘 다 보여드리겠습니다.

01

개발자 스토리 · 밧드용 진공 뚜껑

예약이 취소되면
고기가 남습니다

제가 파는 상품 중에 밧드용 진공 뚜껑이 있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은 스테인리스 밧드를 많이 쓰십니다. 그 밧드에 뚜껑을 덮고 펌핑하면 공기가 빠져나가 식재료를 진공 보관할 수 있는 상품입니다.

이 상품은 실제로 북창동에서 갈비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만드셨습니다.

만들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예약 인원에 맞춰 고기를 넉넉히 준비해 뒀는데, 잇단 예약 취소와 노쇼로 고기가 상해 버려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손실을 줄일 방법을 고민한 끝에 고기를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진공 용기를 직접 개발하신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 왜 힘이 있는지 보십시오. "보관이 불편해서"가 아닙니다.

"노쇼 때문에 고기를 버렸다"입니다. 뚜렷한 장면이 떠오르고, 손해가 얼마인지 짐작되며, 억울한 감정까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상품을 직접 만든 이들에게는 저마다 그 상품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개발 비화를 진솔하게 풀어내면 그 자체가 브랜드 스토리가 됩니다.

02

그럼 만든 사람이 아니면

가져온 이유도
이야기가 됩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저는 개발자가 아니라
유통업자인데요?"

이미 만들어진 상품을 가져다 파는데, 그러면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 수 없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유통하는 사람에게도 수많은 상품 중에 왜 하필 이 상품을 소싱했는지 그 이유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실제로 셀렉트숍 상세페이지를 보면 'MD의 선택', '에디터의 픽(Pick)!'을 앞세워 왜 이 상품을 골랐는지 그 이유를 풀어내곤 합니다.

03

판매자 스토리 · ABC주스

공장을 전국으로
찾아다녔습니다

예전에 컨설팅을 진행했던 사례 중, ABC주스를 판매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원래 ABC주스, 해독주스, 청혈주스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관련 일을 하던 분도 아니었습니다.

계기는 가족이었습니다. 따님의 건강 문제로 도움이 될 방법을 찾다가 ABC주스를 알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직접 주스를 만들어 먹이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매번 직접 만들어 먹이기엔 한계가 있었습니다. 바로 여기서부터가 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내 아이가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ABC주스를 만드는 제조사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도 기준은 명확합니다. 왜 찾아다녔는지까지가 스토리입니다. 마시고 나서 몸이 어떻게 좋아졌는지로 넘어가면, 그건 스토리가 아니라 효능 광고가 됩니다.

발품을 판 끝에 믿을 만한 공장을 찾아냈고, 그 주스를 사입해 스마트스토어를 시작한 사례입니다.

이분은 아무것도 새로 발명하지 않았습니다. 주스도 남이 만든 것이고, 공장도 남의 공장입니다.

하지만 전국을 누빈 건 바로 이분입니다. 그것이 곧 스토리입니다.

이처럼 유통사는 상품을 소싱하게 된 배경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풀어가면 됩니다.

04

두 이야기가 같은 것

재료는
세 개뿐입니다

지난 편에서 무릎보호대를 다루며 등장인물·갈등·극복을 말씀드렸는데, 두 이야기 역시 같은 재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등장인물밧드 · 북창동 갈비집 사장님  /  주스 · 그쪽 일을 하던 분이 아닌 어머니누가
갈등밧드 · 노쇼로 고기를 버렸다  /  주스 · 아무 데나 맡길 수 없었다뭐가 막혔나
극복밧드 · 뚜껑을 만들었다  /  주스 · 전국을 돌아 공장을 찾았다뭘 했나

둘의 차이는 마지막 한 칸뿐입니다. 만들었는가, 찾아냈는가.

그러니 "직접 만든 게 아니라 쓸 게 없다"는 건 마지막 칸만 보고 하는 말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문제를 겪었는지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서사가 바로 신뢰로 이어집니다. 상세페이지에 이런 브랜드 스토리가 있고 없고는 차이가 큽니다. 전문성이 핵심인 상품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05

스토리 다음에 붙는 것

어디서 만드는지도
이야기입니다

신뢰를 높이는 재료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어디서 만들어지는가입니다.

진공 밧드 상세페이지의 국내 제조 블록
진공 밧드 상세페이지의 제조 블록

만약 판매하는 제품이 국내 제조라면, 국내 공장에서 생산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탄탄한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떤 장면을 보여줄지는 상품에 따라 다릅니다. 밧드 뚜껑은 플라스틱 사출 제품이기에 기계 생산 라인이 곧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반면 식품이나 화장품처럼 먹거나 살에 닿는 제품이라면 보여줄 대상이 달라집니다. 청결한 위생 환경이 중요한 품목인 만큼, 깨끗이 정돈된 공장에서 위생복을 갖춰 입고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핵심은 같습니다. 말로 "믿을 수 있다"고 백 번 쓰는 것보다 공장 사진 한 장을 보여주는 편이 낫습니다.

"이 상품을 왜
고르셨습니까?"

만든 분이면 왜 만들었는지, 가져온 분이면 왜 그걸 골랐는지. 답이 없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안 적어놨을 뿐입니다.

거창하게 쓰실 필요 없습니다. 노쇼로 고기를 버린 날 같은 생생한 이야기면 충분합니다.

오히려 손해 본 경험담이 훨씬 잘 읽힙니다.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읽는 이 역시 깊이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엠케터 전준혁

유통사의 몫

기술 없는 브랜드 만들기

망한 날의 일화가 제품이 되듯 제조 기술이 없어도 길은 있습니다. 네 가지 축 가운데 유통사가 쥘 몫을 확인합니다.

다음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