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할 때마다 꼭 나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린 만드는 회사가
아닌데요?"
남이 만든 물건을 떼어다 파는데 브랜드 컨셉을 어떻게 잡느냐는 하소연입니다. 오직 제조사만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은 기술이 전혀 없는 회사가 어떻게 브랜드를 만들어냈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브랜드 컨셉을 만드는 재료
넷 중에
기술은 하나입니다
컨셉이 뚜렷한 제품이 잘 팔리듯, 브랜드 스토리를 완성하려면 브랜드 컨셉부터 명확히 세워야 합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네 가지를 분석하고 종합해, 소비자에게 와닿는 단 하나의 메시지를 도출하면 됩니다.
여기서 기술이 필요한 건 ② 하나뿐입니다. 나머지 셋은 직접 만들지 않는 유통사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②가 없으면 넷 다 없는 줄 압니다. 그래서 브랜드 구축을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죠.
사례 1 · 썬라이즈
카테고리가 아니라
소재로 묶었습니다
먼저 기술을 갖춘 쪽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컨설팅했던 고객사 중 썬라이즈라는 제조사가 있습니다.
실리콘 제조기술이 뛰어나 실리콘 소재로 다양한 완구와 생활용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완구도 만들고 생활용품도 만드니 도대체 어떤 회사로 불러야 할지 애매했던 겁니다.
완구 회사라고 부르면 생활용품이 어색해지고, 생활용품 회사라고 부르면 완구가 겉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①과 ②를 융합해 「실리콘 전문 회사」로 포지셔닝했습니다. 썬라이즈가 만든 실리콘 제품이라면 무엇이든 믿고 쓸 수 있다는 신뢰를 심어준 것이죠.
이 지점이 중요합니다.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무엇으로 만드느냐로 묶었습니다.
무엇으로 묶을 것인가
생활용품 회사
둘 다 들어간다
반면 바툼은 다른 방식으로 묶었습니다. 금형기술과 방수기술이 뛰어난 회사였는데, 초기에는 이 기술로 온갖 가전제품을 다양하게 만들어 팔았습니다.
그러다 경험이 쌓인 끝에 명확한 방향을 정했습니다. 시장 반응이 가장 좋았던 욕실 가전 전문 브랜드로 깃발을 꽂은 것입니다.
욕실 가전만 전문으로 파고드는 곳이 드문 니치 마켓이기에, 선도 브랜드로 입지를 굳히면 나중에 경쟁사가 진입해도 방어할 힘이 생깁니다.
순서에 주목하십시오. 처음부터 정해두고 판 것이 아닙니다. 시장에 먼저 부딪쳐본 뒤 가장 잘되는 쪽으로 좁혔습니다.
사례 2 · 아이비전
안 파는 것으로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기술이 없는 회사의 사례입니다.
아이비전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해외에서 검증된 유명 완구 브랜드와 정식으로 계약해 정품 수입하는 회사입니다.
직접 제조하는 회사가 아니라, 남이 만든 제품을 안목 있게 들여오는 곳이죠.
그런데 좋은 제품을 철저히 선별하기에 이 회사가 소싱하는 제품은 전부 이마트에 공급됩니다.
여기서 이 회사만의 남다른 색깔이 드러납니다. 무엇을 파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안 파느냐에 집중한 것입니다.
선진국에서 잘 팔리는 제품을
형태만 카피한 저가품은 거절합니다.
이것이 아이비전의 확고한 기준입니다. 기술력이 아닌 ‘거절의 기준’으로 차별화했습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제조사가 아니라 기술력은 없지만, 오너 마인드와 영업형태에서부터 아이비전만의 색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그렇게 완성된 핵심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아이비전의 브랜드 메시지
"모든 아이템이 KC 인증과 이마트에 납품되는
두 차례의 안전인증을 받은 안전한 장난감"
두 차례라고 수치를 못 박은 것이 핵심입니다. 이를 한 번으로 뭉뚱그려 말하면 설득력이 절반으로 떨어집니다.
KC 인증은 해당 카테고리를 취급하는 업체라면 누구나 받아야 하므로 차별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마트 납품은 깐깐한 타인이 대신 검증해 준 결과입니다. "우리 물건 좋습니다"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것과, 대형 유통사가 골라냈다고 말하는 것은 신뢰의 무게가 다릅니다.
이런 증거는 대표님의 상품에도 반드시 하나쯤 숨어 있습니다. 어디에 납품해봤다, 어느 대회에 나갔다, 어느 채널에 입점했다. 그저 눈에 띄게 적어두지 않으셨을 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
브랜드명을
검색하기 시작합니다
내 브랜드만이 전할 수 있는 이야기와 고유한 색을 구축했다면, 그다음 실행할 일은 하나입니다.
그것을 콘텐츠로 만들어, 판매 중인 모든 제품 상세페이지에 일관되게 심어주는 것입니다. 브랜딩은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단 한두 군데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파는 물건 전체에 동일한 철학을 녹여냅니다.
그렇다면 브랜딩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분명한 측정 기준이 있습니다.
개별 제품명이 아닌 브랜드명을 검색한다는 것은, 소비자가 그 회사 자체를 알고 싶어 일부러 찾아왔다는 뜻입니다.
브랜딩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명확한 지표죠.
여기서 솔직히 밝히자면, 기술이 없는 아이비전이 넷 중 가장 낮습니다. PC 270, 모바일 870입니다.
가장 수치가 높은 바툼은 PC 1,220에 모바일 4,810으로, 다섯 배쯤 차이가 납니다.
그러니 기술이 없어도 결과까지 똑같이 나온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결코 0은 아닙니다. 한 달에 천 번 넘게, 제품이 아닌 유통사 이름이 검색되고 있으니까요.
남이 만든 물건을 떼어다 파는 회사인데도, 소비자가 그 회사 이름을 검색창에 직접 쳐서 들어온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다만 순서가 있습니다
작은 회사는
제품을 팔아서 회사를 알립니다
여기까지 읽고 "그럼 브랜딩부터 해야겠다"고 성급히 결론을 내리시면 곤란합니다. 실행 순서가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은 억대 예산으로 이미지 광고를 만들어 TV와 대형 전광판에 송출합니다. 회사를 널리 알려서 제품을 파는 방식입니다.
중소기업이 이 방식을 그대로 흉내 내면 1~2번 광고를 하는 것만으로 파산합니다. 회사 인지도를 높이는 일이 곧바로 물건 판매로 연결되지는 않으니까요.
순서가 반대다
제품을 판다
회사를 알린다
작은 회사에 있어 최선의 브랜딩은
그냥 제품을 많이 파는 것입니다
히트 상품 하나를 만들어 제품이 입소문을 타면, "아, 그 유명한 ○○을 만든 회사가 바로 여기였어?"라며 회사 이름도 덩달아 유명해집니다.
바툼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먼저 다양한 가전을 팔았고, 그다음에 욕실 가전 전문으로 좁혔습니다. 성공 순서를 뒤바꾸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서 이런 반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배달의민족이나 마켓컬리는 이미지 광고로 점유율을 높이지 않았느냐고요.
맞습니다. 다만 그것은 계속해서 벤처캐피탈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기에 가능한 전략이었습니다. 막대한 투자금을 붓고도 시장 점유율을 장악하지 못했다면 순식간에 휘청였을 것입니다.
지분을 넘기며 대규모 투자를 받는 구조가 아니라면, 초기에는 무조건 눈앞의 제품을 파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브랜드 컨셉을 정하는 일은 오늘 당장 시작해도 좋습니다. 돈이 들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브랜딩에 본격적으로 비용을 쓰는 것은 이익이 충분히 쌓인 뒤의 일입니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안 적어봐서 없는 겁니다.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어떤 제안은 단호히 거절하는지. 그 기준은 이미 대표님 안에 있습니다. 상세페이지에 옮겨 적지 않았을 뿐입니다.
오늘 하실 일은 딱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거절했던 제안들을 천천히 떠올려보십시오.
왜 거절했는지를 차분히 적어 내려가면, 그 기록이 바로 대표님이 무엇을 파는 사람인지 증명해 주는 답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