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2014년 연말에 일어났던 대한항공 086편 이륙지연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기내식 마카다미아를 봉지째 냈다는 이유로 비행기를 돌려세운 일입니다. 훗날 ‘땅콩회항’으로 불리며 대한민국을 뒤흔든 갑질 논란의 시작이었죠.
그런데 그다음에 벌어진 일이 바로 이번 편의 주제입니다.
사건의 발단이 된 땅콩에 엄청난 관심이 쏠렸고, 주요 오픈마켓에서 마카다미아 판매량이 폭증하며 며칠 만에 재고가 동나버렸습니다.

판이 순식간에 커졌다
아무도 모르던 땅콩이 하루아침에
사건 전까지만 해도 마카다미아는 덜 알려진 견과류라, 소수 셀러가 마니아층만 상대로 팔던 상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자마자 전 국민이 마카다미아를 알게 됐고, 시장의 판도 단숨에 커졌습니다.
기존에 이 상품을 쥐고 있던 판매자들은 발 빠르게 판매 문구(카피)를 바꿔 달았습니다.
비행기까지 돌려세운 바로 그 맛
“지금 뉴스에서 한창 회자되는 바로 그 땅콩”처럼 발 빠른 문구를 앞세워 거센 특수를 누렸습니다.
온라인만 들썩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벌었나
늦게 들어간 쪽은 못 따라왔습니다
사태를 본 후발주자들도 부랴부랴 마카다미아를 수입해 뛰어들었고, 물량 자체는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쏟아지는 수요는 이미 오래전부터 관련 키워드를 선점해둔 기존 판매자들의 몫이었습니다.
물건이 없어서 못 판 게 아니라, 검색창에 뜨지 않아 못 판 것입니다.
오픈마켓은 검색 상단에 노출된 상품이 매출의 대부분을 가져갑니다. 이 순위는 리뷰와 판매 이력이 쌓여야 오르는데, 갓 등록한 상품은 둘 다 0입니다. 몇 년간 누적된 기존 상품의 벽을 며칠 만에 넘을 수는 없습니다.
이슈는 몇 주면 식지만, 검색 순위를 올리는 데는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립니다.
이론 · 번호판
구슬이 어디 떨어질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기존 판매자들은 그저 운이 좋았던 걸까요? 행운은 돌아가는 룰렛 판의 구슬과 같습니다. 어디로 떨어질지 아무도 모르죠.

행운의 구슬은 빙글빙글 돌다 우연히 한 번호판에 떨어집니다. 그리고 마침 그 자리에 서 있던 누군가를 석유왕으로, 철강왕으로, 컴퓨터왕으로 만듭니다.
구슬이 어디에 떨어질지는 신이 아니고서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적어도 번호판 위에 서 있지 않으면 기회조차 찾아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번호판 위에 서 있는다는 건 무엇일까요?
시장 조사를 거쳐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고, 왜 사야 하는지(셀링포인트)를 짚어내는 상세페이지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그다음 알맞은 키워드로 등록해두고, 고객이 검색했을 때 바로 노출되도록 리뷰와 판매 이력을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키워드에 자리를 잡는’ 작업입니다.
대단한 비결이 아니라, 평소에 묵묵히 해두어야 할 기본기입니다.
거의 모든 제품에는 연관 이슈와 시즌, 성수기가 있습니다. 차별점만 갖춰두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뉴스는 신호가 아닙니다
뉴스가 뜰 때쯤엔 이미 늦습니다
여기서 흔히 빠지는 오해가 있습니다. “그럼 뉴스를 예의주시하면 되겠네”라는 생각입니다.
왜 늦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난방비 폭탄입니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으로 천연가스가 귀해지면서 난방비가 1년 새 40% 가까이 치솟았던 그 겨울 말입니다.

이 이슈가 번져간 순서를 찬찬히 뜯어보십시오.
뉴스는 맨 마지막인 4단계입니다. 대중은 이미 놀랐고, 대화를 나눴으며, 검색까지 마친 뒤입니다.
뉴스는 관심을 만들어낸 게 아니라, 이미 쏠린 관심에 이름표를 달아 확인시켜 주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뉴스를 보고 움직이면 3단계에서 검색하던 고객을 죄다 놓친 뒤이며, 그 무렵엔 경쟁자들도 같은 뉴스를 보고 달려듭니다.
난방용품 판매자라면 보도가 나온 4단계가 아니라, 검색이 시작되는 3단계 이전에 이미 상단에 자리 잡고 있었어야 합니다. 마카다미아 후발주자들이 바로 그 늦은 자리에 섰던 셈입니다.
그럼 무엇을 보나
저절로 생기는 쪽이 낫습니다
뉴스를 뒤쫓기 어렵다면, 시기를 미리 알 수 있는 날에 서 있으면 됩니다. 그런 날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 자리를 찾으려면 구매 동기를 살펴야 합니다. 구매 동기는 자연스럽게 생겨나기도 하고, 마케팅으로 억지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자연 발생이란 이런 것입니다. 겨울이 와서 난방용품이 필요해지는 것, 집에 쌀이 떨어져 주문하는 것, 어린이날이 다가와 선물을 고르는 것.
누가 등을 떠밀지 않아도 해마다 때가 되면 찾아옵니다.
자연발생
겨울 · 쌀 · 어린이날 해마다 공짜로 온다
인위적
대기업이 광고로 돈 들여 만든다
반면 인위적으로 만든 구매 동기는 주의해야 합니다.
자본이 넉넉한 대기업은 TV 광고와 홈쇼핑, SNS와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총동원해 없던 수요도 만들어내지만, 자금이 부족한 소상공인이 이를 흉내 내다가는 큰 낭패를 봅니다.
마케팅 예산이 넉넉지 않다면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구매 동기에 집중하는 편이 훨씬 현명합니다. 여름 상품이라면 성수기 두세 달 전부터 등록해 리뷰를 쌓아두어야 제철에 상단 노출을 노릴 수 있습니다.
그날은 이미 달력에 적혀 있습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그 시기가 바로 번호판입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미리 서 있어야지, 뉴스를 보고 나서 움직이면 늦습니다.
마카다미아 셀러들은 땅콩회항을 내다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건을 미리 맞힐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해당 키워드에 자리를 잡고 있었을 뿐입니다. 구슬이 굴러떨어졌을 때, 마침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행운이 매출을 좌우하는 건 맞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평소 길을 닦아둔 사람은 요행이 없어도 팔고, 행운까지 겹치면 훨씬 더 크게 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