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연재 · 18화 · 상세페이지 카피 · 핵트롤

드릴을 팔려면 구멍을 팔아야 합니다.

제조사가 준 문장은 소비자 말이 아닙니다. 읽히게 바꾸는 게 절반, 스펙 다음의 장면까지 보여주는 게 나머지 절반입니다.

상세페이지를 만들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업계 종사자만 알아듣는 전문용어를 쓰게 됩니다.

제조사가 준 스펙 시트(제품 사양표)를 그대로 옮기면 그렇게 됩니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는데 읽는 사람 머릿속에 아무 그림이 안 그려집니다.

소비자가 조금이라도 '이게 무슨 뜻이지?' 생각할 여지를 주는 단어를 써서는 안 됩니다.

01

번역이 두 종류입니다

몰라서 못 읽는 것과
알겠는데 안 그려지는 것

고쳐야 할 문장이 두 갈래라 처방이 다릅니다.

첫째는 뜻을 몰라서 못 읽는 것입니다. db(데시벨)나 IPX(방수 등급)처럼 업계에서만 통하는 표기죠.

고치기 전64.2db의 저소음 모터단위
고친 뒤조용한 사무실 정도의 소음비교 대상

64.2db가 조용한 건지 시끄러운 건지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비교할 대상을 붙여주면 그 자리에서 알게 됩니다.

둘째는 뜻은 아는데 크기가 안 그려지는 것입니다. 애매한 표현도, 정확한 숫자도 여기 들어갑니다.

고치기 전깃털처럼 가벼운 안경테추상
고친 뒤500원 동전 무게의 안경테구체

"깃털처럼 가볍다"는 뜻은 압니다. 그런데 얼마나 가벼운지는 안 잡힙니다. 깃털을 손에 올려본 사람보다 500원짜리를 쥐어본 사람이 훨씬 많죠.

고치기 전17.7L 대용량안 잡힘
고친 뒤1L 생수 17병이 들어가는 대용량잡힘

17.7리터도 같은 경우입니다. 리터가 뭔지도 알고 숫자도 정확한데, 17.7이 얼마나 큰지가 안 잡힙니다. 생수병으로 바꾸니 잡히죠.

세 예시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소비자가 이미 아는 것에 갖다 붙였습니다. 사무실, 생수병, 500원짜리. 전부 누구나 머릿속에 이미 들어 있는 것들입니다.

기준은 이겁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상세페이지를 목표로 카피를 고쳐주세요.

02

배치·크기·간격이 좌우합니다

같은 내용인데
한쪽만 읽힙니다

문장을 다 고쳤는데도 안 읽히는 경우가 있는데, PC 화면에서 잘 보이게 만들었을 때입니다.

상세페이지는 모바일 화면에서 가독성 좋게 만들어야 합니다.

상세페이지 가로 배치와 세로 배치 비교
위아래 두 화면의 내용이 완전히 같습니다. 안전하다, 재미있다, 예쁘다, 교육적이다. 위는 네 칸을 가로로 붙였고, 아래는 두 줄로 나눴습니다.

특징을 가로로 나열하면 스마트폰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네 칸을 한 줄로 늘어놓지 말고 두 줄로 접으십시오. 글씨 크기를 키워서 소비자가 확대하지 않고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실제 수치를 드리면 이렇습니다. 스마트스토어 상세 기본 폭인 가로 860px로 만든다고 할 때의 기준이고, 이 숫자들은 폰에서 이미지가 줄어들어도 안 뭉개지는 최소선입니다.

본문최소 50pt 이상이 아래론 안 보임
서브 타이틀60~80pt중간
헤드라인90~120pt제일 큼

폰트는 저작권 걱정 없는 무료 폰트면 됩니다. 제목엔 굵고 시원한 G마켓산스, 본문엔 획이 고와 작아도 잘 읽히는 나눔스퀘어가 무난합니다.

그리고 간격입니다. 손가락으로 한 스크롤, 한 스크롤 내릴 때마다 내용이 하나씩 보이게끔 간격을 잡아주셔야 합니다.

글은 짧게 씁니다. 장문의 설명문을 구구절절 읊지 말고 핵심 내용만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써주세요. 조금이라도 필요 없는 글자는 전부 다 빼야 합니다.

03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잘 읽힌다고
사는 건 아닙니다

여기까지 하면 읽히는 상세페이지가 됩니다. 그런데 읽힌다고 사는 건 아니죠.

사람이 물건을 사는 이유는 하나가 아닙니다. 꼭 필요해서 사는 니즈(기능적 필요) 말고, 갖고 싶어서 사는 원츠(심리적 욕망)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경험이 있으시겠지만 어떤 제품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 않아도 구매합니다. 기능적 필요가 아니라 심리적 욕망을 자극받았기 때문이죠.

마케팅 명언 중 이런 말이 있습니다.

"드릴을 팔려면
구멍을 팔아라."

사람들이 드릴을 사는 이유는 돌아가는 뾰족한 송곳이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드릴로 구멍을 뚫어 선반을 달고, 액자를 걸어서 아름다워질 집을 마음속에 그리며 구매한다는 것이죠.

제가 페인트 박사 핵트롤이라는 페인트 롤러를 많이 팔 수 있었던 것도, 니즈와 더불어 Before & After를 보여줘 원츠를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핵트롤 상세페이지의 Before After 비교
가운데 줄을 보십시오. Before 벽에 아이 낙서가 있고, After는 하늘색으로 덮여 있죠. 롤러 성능을 한 줄도 안 쓰고 덮은 다음의 방을 보여줍니다.

기능적 필요만 따지면 핵트롤은 페인트가 흘러내리지 않는 롤러 정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심리적 욕망을 파고들면 아름다운 집을 만드는 마법의 지팡이가 됩니다.

여기서 하나 말씀드릴 게 있는데, 저는 원츠를 글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집이 아름다워집니다" 같은 문장을 안 썼습니다.

칠하기 전과 칠한 뒤를 나란히 놓았을 뿐입니다. 적힌 말은 「Before & After」 한 줄이 전부죠. 설명하면 광고가 되고, 보여주면 상상이 됩니다.

스펙 다음에 오는
장면이 빠져 있습니다.

스펙은 대개 다 있습니다. 그걸 쓰고 난 다음의 장면이 있는지가 갈립니다.

결국 오늘 이야기는 세 가지로 좁혀집니다. 낯선 말을 아는 크기로 바꾸고, 모바일에 맞게 키우고, 스펙 다음의 장면을 보여주는 것.

순서가 중요합니다. 안 읽히면 아무것도 시작이 안 되고, 읽히기만 하면 거기서 끝납니다.

셀러박사 전준혁

혼자 하지 마세요

이 문장, 남이 읽으면 뭐가 떠오릅니까

내가 쓴 문장은 내 머릿속에서만 그림이 그려집니다. 상세페이지 첫 화면을 올려놓으시면 어디서 막히는지 읽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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