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 지인이 카메라 한 대를 샀습니다. 저가 DSLR을 사려고 했는데 최종적으로는 30만 원 더 비싼 캐논사의 EOS m50 미러리스 카메라를 샀다고 합니다.
어째서 처음 계획한 예산을 훌쩍 뛰어넘는 카메라를 샀을까요?
남의 사례 둘
스펙을 비교해서
고른 게 아니었습니다
이 제품이 내세우는 컨셉은 이거였습니다.
"1인 크리에이터에게
최적화된 V-log 카메라"
회전이 가능한 후면 디스플레이, 얼굴인식 기능, 자동 밝기 최적화, 우수한 동영상 품질, 가벼운 미러리스 모델. 유튜버들이 브이로그, 곧 영상 일기 촬영에 많이 쓰는 기종이었습니다.
평소 유튜브를 해볼까 생각하던 지인의 마음에 딱 꽂힌 것이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예전에 제 밑에서 일하던 직원에게 컨셉이 무엇인지 설명해준 적이 있는데요. 그러자 하는 말이, 집에서 쓰는 캐논 프린터기도 딱 그 컨셉에 이끌려서 산 것 같다는 겁니다.
그 친구가 산 캐논 PIXMA G2910의 컨셉은 이랬습니다. "노즐 막힘이 적은 가정용 무한잉크 프린터기."
여기가 재밌는 대목인데요, 이 제품은 경쟁사의 무한잉크 프린터기보다 스펙이나 기능의 다양성은 다소 떨어집니다.
그 대신 잉크저장량이 넉넉해서 유지비가 저렴하고, 잉크 분사 기술력이 뛰어나 노즐 막힘과 잔고장이 적다는 베네핏(소비자가 얻는 이득)이 있죠.
스펙 싸움에서 지는데 팔립니다. 무한잉크 프린터를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즐이 막혀 봤고, 그래서 '노즐 막힘이 적다'는 한마디가 정확히 꽂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컨셉이 뭔가
제품을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이 산 걸 정확히 적어보면, 카메라도 프린터도 「제품」이 아니라 「그게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유튜버로 데뷔하려는 상황, 노즐 막힘에 데인 상황.
이처럼 내 제품만의 개성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 것이 컨셉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 물건을 언제, 어떤 상황에 쓰는가」를 한 줄로 적은 겁니다.
소비자들은 제품 자체를 사는 게 아니라 일단 제품이 내세우는 컨셉에 이끌리고, 성능을 검토한 결과 컨셉에 거짓이 없다면 구매합니다.
구매해야 할 이유, 대의명분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그래서 눈길을 끄는 광고 소재를 만들든 상세페이지를 만들든, 모든 콘텐츠에 이 컨셉을 반드시 담아야 합니다.
제가 판 것 셋
전부 상황에서
나왔습니다
남의 이야기만 하면 안 되니 제 것도 꺼내겠습니다. 셋 다 제가 팔던 물건이고, 전부 제품이 아니라 소비자 상황을 들여다보다 컨셉이 나왔습니다.
첫째는 공기청정기입니다. 대부분 가정은 거실에 큰 공기청정기를 놓고 가족 다 함께 씁니다.
그런데 상황을 잘 분석해보면 각자 방에서 사용할 1인용하고 혼자서 자취하는 사람이 쓸 원룸용 수요도 큽니다.
제가 팔던 건 가격도 저렴하고 크기도 작아서 방 안에 하나씩 두고 쓰기 좋았죠. 게다가 센서로 실내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해 자동으로 공기를 케어해주는 차별화 포인트까지 있었습니다.
그래서 컨셉은 이렇게 잡았습니다. "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져다가 쓸 수 있는 똑똑한 1인용 공기청정기."
둘째는 핫큘레이터, 난방 기구인데, 소비자 조사를 하다가 재미난 걸 알게 됐습니다.
한집 안에서도 빨리 방이 따뜻해지는 온풍기를 원하는 쪽과, 뜨거운 바람은 피부를 상하게 한다며 시간이 좀 걸려도 히터를 원하는 쪽이 갈리더군요.
마침 제가 팔던 핫큘레이터는 온풍기와 전기히터를 합친 제품이었습니다. 시중에 이런 2 in 1 제품은 없었죠.
컨셉은 이렇게 갔습니다. "온풍기를 쓰고 싶은 남편과 히터를 쓰고 싶은 아내를 위한 올인원 난방기."
쓰는 사람이 둘이면 갈등이 있고, 갈등이 있으면 컨셉이 나옵니다.
셋째는 자동 손세정기입니다. 기계 앞에 손을 대면 세정제를 자동으로 뿌려주는 물건인데, 코로나가 한창일 때 팔았습니다.
그런데 안 팔렸습니다. 소비자들이 집이나 사무실에서는 대개 화장실로 가 비누로 손을 닦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상황을 더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화장실에 가더라도, 바깥에서 묻혀 온 세균 묻은 손으로 문손잡이며 세면대며 여기저기를 만지기 마련입니다.
그럼 아예 현관에 두면 어떨까.
컨셉을 이렇게 바꿨습니다. "세균의 침입을 현관에서부터 차단하는 우리 집 지킴이."
그러자 팔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제품은 그대로 두고 놓는 자리를 바꿨을 뿐입니다. 화장실에 두면 비누한테 지고, 현관에 두면 이깁니다.
다섯 개를 나란히
상품명이 말 안 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오늘 나온 다섯 개를 한 줄로 놓아보겠습니다.
왼쪽은 무슨 물건인지, 오른쪽은 그걸 왜 사는지입니다. 대개 「언제 쓰는지」이고, 프린터처럼 「무엇이 걱정인지」일 때도 있죠. 다섯 개 전부 오른쪽이 팔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판 셋은 전부 "이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는가"에서 나왔습니다. 제품 사양서를 들여다보다 나온 게 아니죠.
물건이 놓이는 자리를 찾는 순서가 이겁니다.
2단계가 제일 오래 걸리는데, 손세정기가 그 단계에서 살았습니다. 화장실이라는 답을 처음에 적었고, 현관은 한참 뒤에 나왔습니다.
"이 물건, 어디에 두고
언제 씁니까?"
답이 하나만 나오면 아직 덜 본 겁니다. 두는 자리와 쓰는 때, 대개 서너 개는 나옵니다.
그래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면, 지인이 30만 원을 더 낸 건 카메라가 더 좋아서가 아니라 유튜브를 해볼까 하던 자기 사정에 그 한 문장이 맞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