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실패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제가 판 제품이고, 원인도 제 쪽에 있었죠.
없던 카테고리를 만들어 성공한 제품도 하나 있습니다. 실패와 성공을 나란히 놓아야 뭐가 갈렸는지 보이니, 성공한 쪽부터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솜털제거기 · 됐던 쪽
없던 카테고리를
만들어봤습니다
여성용 면도기를 팔고 있었는데, 이상한 점이 하나 눈에 띄었습니다. 얼굴솜털제거를 검색하는 사람은 꾸준한데, 정작 그 사람들이 살 만한 솜털제거기라는 제품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수요는 있는데 물건이 없던 겁니다.
그래서 컨셉을 솜털제거기로 바꿔 걸었습니다.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었으니, 세상에 많고 많은 면도기 가운데 솜털제거기·얼굴솜털제거기로 검색하면 제 제품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시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소비자는 대부분 제 제품으로 왔습니다.
여기서 하나 재밌는 게 있습니다. 처음 키우려던 카테고리는 솜털제거기였는데, 결과적으로 얼굴솜털제거기 시장이 더 커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품이 사실 얼굴 솜털에는 잘 들었지만, 전신 솜털까지 밀자니 절삭력, 곧 털을 깎아내는 힘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소비자도 자연히 얼굴 쪽으로 더 몰린 거죠.
시장이 제품의 실력만큼만 커진 겁니다. 광고로 문은 열어도, 시장 크기를 정하는 건 결국 제품이었습니다.
욕실청소기 · 안 됐던 쪽
광고가 끝나자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처음 바툼 욕실청소기를 판매할 때, 화장실 청소 관련 시장은 있었지만 욕실청소기 시장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걸 했죠.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 작정으로 마케팅을 퍼부어서 2017년 상반기에 바툼 욕실청소기의 검색량을 끌어올렸습니다.
여기까지는 성공이었습니다.
그런데 광고와 마케팅이 끝난 이후에도 꾸준히 검색이 유지되던 솜털제거기와 달리, 초록은 거의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다시 바닥을 쳤습니다.
왜 그럴까요. 시장이 없어서는 아니었습니다. 일시적으로나마 검색량이 오를 만큼, 수요는 분명히 있었으니까요. 앞의 솜털제거기와 똑같이 없던 카테고리에 마케팅을 부었고, 검색량도 똑같이 솟았으니 여기까지는 판박이였죠.
갈린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막상 사서 써본 소비자를, 제품이 만족시키지 못한 겁니다. 그러니 한 번 써보고는 다시 찾지 않았고, 입소문도 붙지 않았습니다. 관심에서 멀어진 검색어는 슬그머니 원래 자리로 돌아갔고요.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솜털제거기처럼 제품력이 받쳐주면 새 시장이 통째로 만들어지지만, 욕실청소기처럼 부실하면 잠깐 떴다 지는 화무십일홍, 곧 열흘을 못 가는 꽃으로 끝납니다.
이론 · 만족도가 정해지는 식
기대감만 올리면
만족이 깎입니다
두 사례가 갈린 지점을 식으로 적으면 이렇게 됩니다.
만족도가 정해지는 자리
만족도 = 상품력 − 기대감
여기서 상품력은 소비자가 실제로 써보고 느끼는 만족, 곧 성능과 품질입니다. 마케팅이 하는 일은 기대감을 올리는 것이고요. 그런데 상품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기대감을 올릴수록 만족도는 오히려 깎입니다.
그래서 저는 상세페이지를 만들 때마다 한 번 멈춥니다. 소비자를 혹하게 만드는 내용을 넣는 건 물론 중요합니다. 그런데 과장 광고, 과대 광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광고 메시지가 내 상품력을 뛰어넘어 기대감만 잔뜩 높여 놓으면, 딱 그만큼 만족도가 팍 떨어지니까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만족은 언제 확정되나
결제가 아니라
한 달 뒤에 옵니다
여기까지는 시장이 생기느냐였습니다. 그런데 상품력은 결제하는 순간 바로 드러나지 않고, 한참 뒤에 판가름 나죠. 그걸 보여준 제품이 제가 예전에 팔았던 욕실온풍기입니다.
이 제품의 매력적인 차별화는 성능과 디자인이었고, 소비자는 난방비 폭탄 이슈 때문에 저렴한 전기세로 따뜻한 욕실을 만들어주는 제품을 산 겁니다.
결제 버튼을 누른 건 여기까지고, 정작 만족은 그다음부터죠.
소비자는 이 제품을 한 달쯤 씁니다. 기대한 대로 욕실은 따뜻했고요. 그리고 한 달 뒤, 고지서가 옵니다. 전기세가 싸고 가스를 덜 써서, 난방비 총액이 실제로 줄어 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광고가 아니라 제품이 약속을 지켰다는 게 증명되면서 소비자는 비로소 큰 만족을 느낍니다.
그럼 디자인은요? 벽에 걸린 모던한 모양이 주는 즐거움은 성능이 채워진 다음에야 얹히는, 부차적인 만족입니다. 성능이 먼저고 디자인이 그다음, 이렇게 순서가 있는 거죠.
결국 결제 버튼을 누른 시점과 만족이 정해지는 시점 사이엔 한 달이라는 시차가 있는 셈입니다. 욕실온풍기는 그 한 달을 버텨 만족으로 넘어갔고, 욕실청소기는 바로 그 한 달을 못 넘긴 겁니다.
그래서 새 시장을 열었다고 끝이 아닙니다. 그 자리를 지키려면 꾸준히 업그레이드한 후속작을 내고, 충성고객을 관리하며 카테고리 리더, 곧 그 분야 1등 자리를 계속 이어가야 합니다. 저는 그 관리를 못 해 자리를 내준 거고요.
제가 놓친 게 바로 이 순서였습니다. 그러니 안 팔릴 때 어디부터 고쳐야 하는지, 차례대로 짚어보겠습니다.
4단계가 이 편의 전부입니다. 안 팔릴 때 제일 먼저 손이 가는 게 광고인데, 여기서는 광고를 늘릴수록 나빠집니다. 기대감만 더 올라가니까요.
"저 봉우리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광고를 끄고 한두 달 뒤 브랜드 검색량을 보시면 됩니다. 남아 있으면 제품이 받친 겁니다. 사라지면 제품이 못 받친 거고요.
초록 선을 다시 보십시오. 마케팅이 만든 건 저 봉우리까지입니다. 그 뒤를 지키는 건 제품이고, 제품이 받쳤는지는 한 달 뒤 고지서와 재구매에서 드러납니다. 저희 욕실청소기는 거기까지 가지 못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