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연재 · 12화 · 사나고 · 다이슨과 차이슨

카테고리 1위를 경쟁사에서 뺐습니다.

3D펜 부동의 1위였고, 구독자 300만 명짜리 브랜드였지만 체급이 안 맞았습니다.

당그니 3D펜의 대표 카테고리는 3D펜이고, 이 시장의 부동의 1위는 사나고 3D펜이었습니다.

사나고는 구독자 300만 명이 넘는 3D펜 유튜버입니다. 사실상 3D펜을 대중화한 사람이죠.

여기까지만 보면 답이 나온 듯합니다. 1위를 뜯어보고, 1위와 다르게 만들면 되겠구나 싶었지만 실제로는 달랐습니다.

01

1위를 뺀 이유

쓰는 사람이 아예 달랐습니다

두 제품이 쓰는 재료, 곧 펜에 넣어 녹이는 필라멘트부터 달랐습니다.

사나고 3D펜

고온 필라멘트 · 성인용

당그니 3D펜

저온 필라멘트 · 어린이용

책상 위에 나란히 놓인 작은 3D펜과 큰 3D펜
크기가 다른 3D펜 두 자루

온도가 곧 사용자를 가릅니다. 저온 필라멘트는 잘 데지 않아 아이가 만져도 안전하지만, 고온은 화상 위험이 있어 어른 손에 맞습니다. 그러니 사나고 3D펜은 애초에 체급이 달라 경쟁사가 아니었습니다.

아이에게 3D펜을 사주려는 부모가 성인용 고온 제품과 저희 제품을 놓고 고민하지는 않으니까요. 애초에 후보에도 안 올라갑니다.

여기서 빗나가면 뒤가 다 틀어집니다. 경쟁사 선정을 잘못하면 상세페이지에서 차별화를 다룰 때 소비자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엉뚱한 메시지를 던지게 됩니다. 성인용 고온 제품을 이기려고 만든 문장을 아이 부모가 읽게 되는 셈입니다.

02

이론 · 체급

체급을 넘어 비교하지 않습니다

체급이라는 말을 쓴 이유가 있습니다. 복싱이나 종합격투기만 봐도 플라이급, 페더급처럼 체급을 나눠 겨룹니다.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체육관 벽에 크기별로 걸려 있는 낡은 글러브들
체육관 벽의 체급별 글러브들

청소기로 보면 더 분명합니다. 다이슨은 100만 원대 프리미엄 무선청소기이고, 차이슨은 이를 본떠 20~30만 원대로 값을 낮춘 저가 제품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이 둘을 나란히 두고 무엇을 살지 고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닥에 나란히 세워 둔 무선청소기 두 대. 한쪽은 마감이 곱고 한쪽은 수수하다
나란히 선 두 대의 무선청소기

다이슨은 체급이 맞는 LG전자 코드제로(LG의 프리미엄 무선청소기)와 직접 맞붙습니다. 그리고 차이슨을 사기로 마음먹은 소비자는 체급이 비슷한 20~30만 원대 청소기들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100만 원대 · 여기서 싸움다이슨 ↔ LG전자 코드제로
사이 · 넘어가지 않음서로 비교하지 않는다
20~30만 원대 · 여기서 싸움차이슨 ↔ 비슷한 가격대 청소기들

같은 무선청소기인데도 두 시장은 따로 돌아갑니다. 100만 원을 쓸 사람과 20만 원을 쓸 사람이 같은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지는 않으니까요.

내 경쟁 상품은 카테고리 1위가 아니라, 소비자가 나와 나란히 두고 고민하는 바로 그 상품입니다.

03

차이슨은 어디서 왔나

이긴 자리가 다음 빈틈을 만듭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흥미로운 점이 보입니다. 차이슨이 왜 생겨났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다이슨이 시장을 잡은 방식부터 보겠습니다. 기존의 불편을 개선해 대박을 터뜨린 대표 제품이 다이슨 무선청소기입니다. 바닥을 청소할 때마다 전기 코드가 걸리적거리던 불편을 없앴죠.

거실 바닥을 가로질러 의자 다리에 감긴 청소기 전선
의자 다리에 감긴 청소기 전선

선을 없앴습니다. 그게 전부였고, 그 하나로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그런데 이긴 자리가 새로운 불편을 낳았습니다. 다이슨 무선청소기는 누구나 갖고 싶어 하지만, 100만 원대라는 부담이 따릅니다. 선이 걸리는 불편은 사라졌지만, 100만 원이라는 새로운 불편이 생긴 것입니다.

이 지점을 파고들어 중소기업들이 다이슨을 모방하면서 가격을 낮춘 차이슨 청소기를 만들어 흥행을 거뒀습니다.

원래 불편 · 다이슨이 해결바닥을 청소하는데 전기코드가 걸린다
해결의 대가 · 새 불편선은 없어졌는데 100만 원이 됐다
다음 차례 · 차이슨이 해결그 기능을 20~30만 원대로 내렸다

이 사슬이 중요합니다. 차별화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를 해결하면 그 해결책이 또 다른 불편을 만들고, 거기가 다음 주자의 몫이 됩니다.

노트북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생들도 여유만 있다면 삼성이나 LG 노트북을 쓰고 싶어 하지만, 100만 원대는 부담스러워 더 저렴한 아수스나 레노버를 많이 찾습니다. 여기도 체급이 둘로 나뉩니다.

싼 물건부터 비싼 물건까지 놓인 진열대 사이에 선 장바구니
진열대 사이에 선 장바구니

윗 칸을 눈으로 올려다볼 수는 있어도, 실제 장바구니엔 내 체급만 담깁니다.

04

그래서 누가 경쟁사인가

1위를 어디에 놓을 것인가

사나고는 결국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경쟁사 · 탈락아니다. 체급이 다르다.
키워드 · 쓴다사나고 3D펜 같은 브랜드명 키워드는 상품명 짓는 데 직접 쓰지는 못하지만, 경쟁 상황을 볼 때는 쓸 수 있는 키워드다.

기준에 따라 한 브랜드의 위치가 달라집니다. 남의 브랜드명은 상표나 플랫폼 규정상 내 상품명에 쓸 수는 없지만, 시장 판도를 살필 때는 얼마든지 검색해 볼 수 있습니다. 비교 대상에서는 뺐더라도 키워드로는 활용하는 셈입니다. 1위를 아예 안 본다는 뜻이 아니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300만이라는 숫자도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건 유튜브 구독자 수일 뿐, 3D펜 판매량이 아닙니다. 큰 숫자가 보일 땐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 수치인지부터 짚어봐야 합니다.

소비자가 둘을 나란히 안 놓으면 경쟁사가 아닙니다.

경쟁사인지 아닌지는 판매자가 정하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1위라 해도 소비자 장바구니에서 나와 나란히 놓이지 않는다면, 그건 남의 시장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내 체급은 어떻게 찾을까요. 내 상품이 설 정확한 자리부터 잡아야 합니다. 제 사례로 돌아가 보면 이렇습니다. 저온3D펜인지, 어린이3D펜인지, 그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상품들이 바로 내 체급입니다.

가격표를 함께 보면 더 명확해집니다. 내 가격대 위아래로 누가 포진해 있는지 살펴보면, 진짜 싸움터가 어디인지 드러납니다.

1위는 대개 그 위 칸에 머뭅니다. 사나고가 그랬듯이요. 부동의 1위였을지언정, 제 장바구니 칸에는 올라오지 않는 남의 시장이었습니다.

엠케터 전준혁

다음 잣대

네 칸에 안 들면 왜 거절할까

온갖 제품 제안이 쏟아져도 섣불리 손대지 않고 딱 네 가지 기준으로만 걸러내는 셀러의 선별법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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