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연재 · 14화 · 몰랑이 애착비누 · 실리커

캐릭터를 귀여워서 고른 게 아닙니다.

비누로 만들 캐릭터를 고르는 기준이 "손 씻을 때 안 불편한가"였습니다. 디자인 차별화인데 판단 근거가 쓰는 장면이었죠.

완구업체에서 비누 만들기 키트 판매를 도와달라고 찾아왔습니다.

문제는 시장이었습니다. 성분 좋은 천연 비누 만들기 세트부터 귀여운 동물 모양 비누 만들기까지 경쟁 상품이 많았습니다.

아무런 차별화 없이 그대로 팔면 승산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01

사례 1 · 애착비누 몰랑이

기능으로 안 되면
모양으로 차별화합니다

비누 자체는 기능으로 차별화하기 힘듭니다. 씻기는 것 말고 더 할 일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디자인의 차별화가 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사용할 테니, 비누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만들면 어떨까.

찾아보니 자리가 있었습니다. 시중에 여러 모양 비누 만들기는 있지만, 캐릭터 비누 만들기는 없었습니다.

그 길로 아이들이 좋아할 캐릭터를 조사했고, 눈에 들어온 게 돼지토끼 몰랑이였습니다.

02

왜 하필 몰랑이였나

모서리가 있으면
손을 못 씻습니다

여기가 이 사례에서 제일 중요한 대목입니다. 몰랑이를 고른 이유가 귀여워서가 아닙니다.

다른 캐릭터는 모양이 들쑥날쑥해서 비누로 만든 후 손 씻을 때 불편한데, 몰랑이는 디자인이 둥글둥글해서 비누로 사용하기에도 딱 적당했습니다.

귀여운 캐릭터는 세상에 많지만, 비누로 만들었을 때 손에 안 걸리는 캐릭터는 그중 일부입니다.

뾰족한 귀, 튀어나온 팔다리, 각진 모서리. 그림으로는 예쁜데 비누가 되면 손바닥에 걸립니다. 몇 번 쓰다 보면 그 부분부터 부러지고요.

애착비누 몰랑이 클레이 세트 - 둥글둥글한 몰랑이 캐릭터
「애착비누 몰랑이」 클레이 세트입니다. 오른쪽 아래 돼지토끼가 몰랑이인데, 뾰족한 데 없이 둥글둥글하죠. 비누가 돼도 손에 걸릴 모서리가 없습니다.

디자인 차별화인데 판단 기준이 사용 장면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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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에 생긴 일

체험단을 안 했는데
후기가 붙었습니다

둥근 모양은 오래 써도 안 부러지니 결과물이 예쁘게 남았습니다. 그러자 예상 못 한 일이 생겼죠. 따로 체험단(제품을 공짜로 주고 후기를 받는 것)을 하지 않았는데도, 사용 후기가 많이 올라왔습니다.

인스타그램 몰랑이비누 해시태그 검색 결과
인스타그램에서 몰랑이비누를 검색한 화면입니다. 게시물 개수보다 눈여겨볼 건, 해시태그가 아홉 갈래로 갈렸다는 점이죠. 몰랑이비누만들기키트·몰랑이비누만들기·몰랑이비누키트·몰랑이비누방울…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저마다 알아서 올렸다는 증거입니다.

이건 매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올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올릴까요. DIY 상품이라 그렇습니다. 부모님은 '우리 아이가 이걸 직접 만들었어요' 하고 SNS에 자랑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자랑하는 건 아이가 아니라 부모입니다. 그래서 결과물이 예뻐야 했던 거고요.

04

사례 2 · 실리커

불편한 사람이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가 반복됩니다. 정작 봐야 할 사람이 아이가 아니라 부모라는 것. 제가 판매했던 실리커가 그 예입니다. 형형색색의 실리콘 스티커를 붙여 작품을 만드는 완구죠.

이 제품이 없앤 불편이 뭔지 보시죠.

아이들은 스티커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집안 아무데나 붙이고 다니면 나중에 떼기가 힘들어서 함부로 사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불편한 사람이 누구인지 보십시오. 아이가 아니라 떼는 사람입니다.

아이는 스티커가 잘 붙어서 좋고, 부모는 그게 잘 붙어서 곤란합니다. 같은 성질이 한쪽엔 장점이고 한쪽엔 단점입니다.

실리콘이라 떼기가 수월하니, 아이는 마음껏 붙이고 부모는 안 말립니다.

그래서 이 제품을 스티커가 아니라 '붙이는 퍼즐블럭'이라고 불렀습니다.

실리커 - 이제는 붙이는 퍼즐블럭 시대
화면에 적힌 말이 "이제는 붙이는 퍼즐블럭 시대!" 입니다. 스티커라고 안 하고 퍼즐블럭이라 부르죠. 뒤에 붙은 게 실리콘 조각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이름을 그렇게 붙인 이유가 있죠. 기존 퍼즐 블록은 구성품을 갖고 조립하거나 만들어야 했는데, 실리커는 붙이는 퍼즐 블록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겁니다.

스티커라고 하면 부모가 경계하는 그 물건이 되고, 퍼즐 블록이라고 하면 사줘도 되는 물건이 됩니다.

그래서 자녀를 둔 부모님으로부터 정말 반응이 좋았던 상품이었죠.

05

그래서 값은

성능이 같으면
더 받아도 됩니다

실리커는 아예 새 장르라 견줄 상대가 없었고, 값 이야기는 몰랑이 쪽이 더 분명합니다. 몰랑이 비누로 돌아가보죠. 시중의 다른 비누 만들기 키트와 성능은 동일합니다. 만드는 방식도, 들어가는 재료도 같고요.

다만 몰랑이 IP(캐릭터를 정식으로 빌려 쓰는 권리)를 얹었죠.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붙으니, 같은 비누라도 값이 아깝지 않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걸 가심비 상품이라고 합니다.

물론 IP를 쓰면 로열티가 나갑니다. 더 받은 값이 고스란히 남지는 않는다는 뜻이죠.

여기서 가격 정책이 갈립니다.

둘은 값을 반대로 매긴다

가성비
경쟁사보다
가격을 좀 더 낮게
가심비
경쟁사보다
가격을 조금 더 높게

같은 성능인데 값을 더 받는 게 맞습니다. 싸게 팔면 오히려 이상해지죠. 좋아하는 캐릭터가 붙어 있는데 제일 싸면, 그 캐릭터가 싸구려로 보이니까요.

값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두 사례를 관통하는 건 하나예요.

상세페이지 말고
쓰는 5분을 보십시오.

몰랑이는 손 씻는 장면에서 골랐고, 실리커는 떼는 장면에서 나왔습니다. 둘 다 상세페이지를 보다가 나온 게 아니라, 쓰는 5분을 보다가 나왔습니다.

대표님 상품도 한번 돌려보십시오. 사서, 뜯고, 쓰고, 치우는 그 5분입니다.

거기서 누가 걸리는지까지 보시면 됩니다. 쓰는 사람이 걸리는지, 옆에서 치우는 사람이 걸리는지. 실리커가 딱 그랬죠. 걸린 사람이 아이가 아니라 부모여서, 아이 장난감이 아니라 '부모가 사줘도 되는 물건'이 됐습니다.

셀러박사 전준혁

혼자 하지 마세요

쓰는 장면에서 누가 걸립니까

내 상품은 내가 써봐서 이미 익숙합니다. 그래서 걸리는 데가 안 보이죠. 쓰는 순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적어 올려놓으시면 남들이 어디서 걸리는지 짚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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